[BOOK/꿈나무] 위인전, 섣불리 읽혔다간 손해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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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너무 어린 나이에 위인전을 읽는 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림은 위인전 『대통령 박정희』(엠씨에스북)에서.

'아이들의 꿈을 키우기 위해선 위인전을 읽혀라'.

독서교육의 ABC다. 맞다. 하지만 막상 서점에 꽂혀 있는 위인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주인공의 성공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시절의 유행을 민감하게 따른 위인전이 상당수다. 일례로 올 하반기에만 황우석 교수를 내세운 어린이용 전기가 일곱 권 출간됐다. (황 교수의 공적이 대단하나 아직 그에 대한 평가는 열려있는 단계다.)

또 최근 위인전 '대통령 박정희'(엠씨에스북)가 나왔다. 출판사 측은 "박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어린이용 책까지 출간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 박정희의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나쁜 점이든, 좋은 점이든 한쪽만 강조하는 건 균형 감각이란 위인전의 기본에서 벗어나는 얘기다.

위인전은 어떻게 읽혀야 할까. 전문가 조언을 모아봤다.

◆"10살 이전엔 읽히지 마라"=제철음식이 몸에 좋듯, 책도 나이에 맞게 골라야 한다. 만4세에서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상상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다. 상상력은 창의력과 직결된다. 이 시기에는 동화를 많이 읽어야 한다. 위인전.과학책은 합리적 사고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3학년 이후가 알맞다.

유아.저학년 대상의 위인전은 특정 에피소드를 부각하고 픽션을 덧붙여 동화처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인물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 교훈을 전하는 위인전의 본뜻을 살리기 힘들다.

"저학년까지는 간단한 위인전을 읽히고 그 뒤에 보다 상세한 위인전을 사주겠다"는 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맛보기'가 책에 대한 아이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바람대로 '맛보기→궁금증 유발→심화 독서'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위인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예컨대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데 반발한 19세기 여권 운동가를 다룬 '치마를 입어야지 아멜리아 블루머'(아이세움)를 다섯 살 꼬마에게 읽혔을 경우, 아이는 코르셋으로 허리를 바짝 조인 뒤 '예쁜'드레스를 입은 등장인물에 반하기 쉽다. 책의 의도와 정반대 효과다.

◆"판타지 위인전은 피하라"=주인공의 모든 것을 위대하게 묘사하는 판타지는 경계 대상이다. 비판 기능이 생기는 12세 이후에는 그런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책을 불신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 없어진다. 더 어린 나이에 '과장된' 위인전을 읽었던 아이들은 비판 의식이 생기면서 '속았다'는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다. 인간적 약점이나 실수, 또 고뇌와 절망을 극복해가는 모습이 고루 담겨야 감동이 살아난다.

또 예사롭지 않은 태몽 등 어린 시절의 비범한 에피소드로 채워진 '신동 위인전'은 아이들에게 '나는 시작부터 틀렸어'란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일화에 무게를 싣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선전 위인전'도 금물이다. 특히 생존 인물을 다룬 위인전은 일방적 미화로 흐를 수 있다. '관 뚜껑에 못질하기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도움말 주신 분=김성근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충주여고 과학교사),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 박선이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이사, 오진원 '오른발 왼발' 운영자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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