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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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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말엔 불교에서 전래한 것들이 많다. 불교가 오랫동안 민족의 삶과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예컨대 체면을 뜻하는 '면목(面目)'은 본래 사람의 맑고 깨끗한 진수(眞髓), 즉 불성(佛性)을 일컫는 말이었다. 도지사의 '지사(知事)'는 '절의 사무를 맡아보는 일'이란 뜻이었고, 기독교의 '장로(長老)'는 본디 '지혜와 덕이 높은 스님'이란 말이었다. '투기(投機)'란 단어도 불가에서 나왔다. '마음을 열고 몸을 던져 부처의 깨달음을 얻으려 한다'는 의미였으니 요즘과 달리 뜻이 훌륭했던 말이다.

투기처럼 의미와 인상이 달라진 불교용어로 '건달(乾達)'이 있다. 산스크리트어 간다르바(Gandharva)를 한자로 표기한 '건달바(乾婆)'에서 유래한 이 말의 본뜻은 '음악의 신'이다. 수미산(須彌山.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 남쪽 금강굴에 살면서 천상의 음악을 책임진 신이다. 술과 고기는 입에 대지 않고 향내만 맡고 사는 신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다. 석굴암에 가면 건달바를 비롯한 팔부신중의 상을 볼 수 있다. 불교도들이 향을 피우는 건 건달바를 봉양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풍습이라 한다.

향기와 음악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건달바가 사는 성(城), 즉 건달성은 신기루를 뜻하기도 했다. '인생이 건달성과 같다'는 불가의 말은 인생무상의 동의어다. 건달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난봉꾼'이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다. 양반문화가 예술을 천시하던 시절이 지속되면서 '건달'의 위상도 추락한 것이리라.

경제사학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노무현 정부를 "건달 정부"라 불러 파문이 일었다. "이 정부는 국내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하는 일이 없다"거나, "체계 없이 일만 벌여 놓고 있으니 아이디어의 쓰레기통에 불과하다"는 등의 비판엔 과한 점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여당이 보인 반응은 유치했다. "교수가 어떻게 건달 정부라고 말할 수 있느냐" "허무맹랑한 소리를 뉴스라고 쓰는 게 우리 언론"이라는 등의 대꾸는 너무도 단세포적이다. 그건 여권의 속이 좁다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청와대와 여당은 비판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수 없는 걸까. 태도를 바꾸면 얼마든지 '양반 정부'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