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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B의장 버냉키'는 최선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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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동안 백악관 주변에서 흘러나온 하마평에 올랐던 후보 중에는 정말 끔찍한 인물도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처럼 최고의 경제전문가를 얻었다. 버냉키는 세계 경제를 이끌 능력을 갖춘 안심해도 될 만한 인물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 내년 2월에 취임하면 능력을 십분 발휘할 것으로 믿고 있다.

FRB 의장이란 자리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린스펀이 위대한 인물이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FRB 의장직을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 산 위로 끌어올려 신격화한 것은 주변의 묘한 분위기가 한몫했다.

우선 세계 3대 경제권에 속하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을 보자. 이들은 제 기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해왔다. FRB가 최근 1년 동안 인플레이션과 산업 생산을 진정시키기 위해 기민하게 금리를 조정해온 것과 달리 ECB와 BOJ는 기준 금리를 수년간 동결했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히 시간을 맞추기 때문에 금리 조정 실패만 갖고 이들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난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어쨌든 두 중앙은행의 존재 의미가 미약해진 가운데 세계 경제는 FRB의 독무대가 되다시피 했다.

또 FRB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FRB 의장은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해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재무부 장관과 같은 미국 정부의 고위인사가 적절히 FRB에 대한 견제와 균형자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에서는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린스펀에 맞설 만큼 정치적 지지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수많은 긴박한 문제로 눈코 뜰 새 없는 미국 대통령이 종일 경제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FRB 의장과 경쟁하기 어렵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그린스펀이 해온 최고 경제전문가의 역할을 이어갈 인물로 차기 FRB 의장을 낙점했다고 봐야 한다. 버냉키라는 이름은 그린스펀이 그랬던 것처럼 머잖아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릴 것이다.

다시 화제를 ECB와 BOJ로 돌려보자. 두 기관의 문제는 단지 금리 결정에서 보여준 무기력함 때문이 아니다. 통화정책 외의 핵심 경제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이들은 과도한 제약을 받고 있다. 범 유럽연합(EU)권의 최고 경제기구로서 ECB는 재정과 통상정책, 인구변동 등의 문제를 논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수많은 논쟁에서 기술적 측면에 기여한 것을 빼면 ECB는 정치적 제약 때문에 주어진 영역을 훌쩍 넘어서지 못했다. 불행스럽지만 각국이 모여 만든 ECB 모델의 한계다. BOJ의 근본 문제는 이 기관의 정책이 나라를 정치적으로 뒤흔들어 경제정책 주도기관으로서 BOJ의 위상에 악영향을 줄까봐 심히 두려워하는 데 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미국의 FRB는 오늘날 분에 넘치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고삐 풀린 권력은 ECB와 BOJ가 제 기능을 회복하는 순간 주춤해질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또 우연이든 운명이든 부시 대통령이 그린스펀의 후임으로 적임자를 내정해 우리는 안도할 수 있게 됐다. 자칫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경제·공공정책학 교수

정리=장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