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2) 제80화 한일회담 (5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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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업분과위 제1차 회의는 한일 본 회담이 개시된지 닷새만인 52년 2월 20일에 열렸다.
평화선이 선포된지 불과 1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라 회의는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먼저 일본측의 「지바」(천엽)대표와 우리측의 임철호대표가 인사말을 나눈 뒤 일본측이 전문 11조로 된 「일한 양국의 어업 협정안」 에 대한 조문설명을 시작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협정안의 주요골자는 이러했다.
①어업자원개발은 공해자유의 원칙아래 양국이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지도록 한다.
②자유로운 조업의 범위를 협정에 명확히 정한다.
③동해와 황해의 주요 어종보호를 위해 트롤어업과 기선저인망어업의 금지구역을 설정한다.
④이를 위한 어업공동위를 설치한다. 이같은 일본측 제안의 핵심은 요컨대 영해 3해리 밖은 공해이므로 자유로운 조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한국의 평화선 선포는 부당하니 철폐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면에 우리측은 어업자원의 남획을 막아 지속적인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접한 일정수역은 배타적인 관할권이 행사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같은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는 우선 미국·캐나다·일본간의 어업협정해석을 둘러싸고 양측의 격렬한 논쟁으로 표면화되었다.
원래 이들 3개국간의 어업협정체결에 있어 일본은 패전국이란 조건 때문에 그들이 전전 미국·캐나다의 연근해까지 진출해 무질서한 남획을 일삼은데 대한 규제를 감수해야만 했고, 그 결과 일본은「연안국의 어업관할권 존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은 미국과 캐나다에 대해서는 연안국 어업관할권을 존중해 이들 국가 연근해에 출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일본측에 「연안국의 어업관할권 존중」의 해석을 요구했던 것이나 일본측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얼버무리려했다.
바로 미국과 캐나다를 대하는 얼굴과 한국을 대하는 얼굴이 서로 다른 「두개의 얼굴」 을 보였던 것이다.
이에 우리측은 『직접 조약당사국으로 조약을 체결하고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해석을 하는 것은 한국의 평화선을 의식한 나머지 고의적으로 답변을 흐리려는 표리부동한 처사』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우리측의 김동조 대표는 구체적으로『미국·캐나다·일본간의 어업협정은 어업자원의 보존, 특히 연안국의 어업관할권을 존중한다는 것이 기본정신인데도 일본이 한국에 제시한 어업협정안은 시종일관 켸켸묵은 국제법교과서에나 있는 고전적인 공해자유·어로자유원칙만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측은 『북태평양어업을 위한 국제조약(미·일·캐나다어업협정) 제 1조 2항은 필요할 경우 연안국은 어업자원보호를 위해 영해뿐만 아닌 공해상에 대해서도 어업관할권을 설정할 수 있다는 국제법상의 새로운 선례와 원칙을 부여한 것이 아니냐』고 일본측의 모호한 태도를 거듭 지적했다.
우리측은 또 미국·캐나다·일본의 어업협정 제 3조 1항 단서에 규정된「5년간 일정 어종에 대해 자발적으로 어업활동을 억지한다」고 한 것은 일본이 공해상의 관할권을 인정한 구체적 예이며, 이는 일본이 우리에게 외치고 있는 공해자유원칙을 이미 스스로 수정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밖에도 우리측은 『지난 30년대 대규모선단을 베링해 동부로 진출시켜 미국으로부터. 격렬한 비난과 불신을 받기까지 했던 일본이 지금에 와서 출어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과연 일본측이 주장하는 공해자유의 원칙에서 이루어진 것이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쓰디쓴 표정이면서도 끝내 △공해상의 어업자유보장 △연안국의 공해상 어업관할권 불인정 주장을 고집했다.
이후 어업회담은 모두 15차례나 계속됐지만 양측의 주장이 되풀이됐을 뿐,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회담개시 두달만인 4월 20일 폐지되고 말았으니 이는 어업회담 개시에서 타결에 이르는 14년 논쟁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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