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 FTAA 합의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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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창설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4차 미주정상회담이 격렬한 반미 시위 속에 가시적 성과 없이 5일 끝났다. 아르헨티나 해변 휴양지 마르 델 플라타에서 4, 5일 이틀간 열린 이번 회의에는 미국 등 34개국 정상들이 참석했다. 회담 주최국인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반미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 FTAA 창설 협상 실패=미국은 'FTAA 창설을 위해 내년 4월 고위급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멕시코 등 28개국이 지지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반대해 무산됐다. 반대국은 베네수엘라.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회원인 이들 5개국은 미국의 농업 보조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양측의 입장이 함께 반영된 선언문이 어렵사리 채택됐다.

선언문에서 미국 등 29개국은'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대국들은 '12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논의될 보조금 지급 관련 협상을 보고 추후에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예정보다 여덟 시간이나 늦게 선언문이 발표됐다. 대부분 정상들이 회의장을 떠난 가운데 고위급 관료들이 막판 협상을 벌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선언문이 발표되기 전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로 떠났다.

◆ 회담장 주변 반미 시위=회담장인 마르 델 플라타와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전국 200여 곳에서 반미시위가 열렸다. 회담장에서 1km 떨어진 시위현장엔 반미를 선도해온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등장했다. 차베스는 반미를 대표하는 국가인 쿠바의 야구팀 모자를 쓰고 등장해 "미국이 주도하는 FTAA는 장례식에 갈 때가 된 죽은 악마"라며 "중남미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부시=전범'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온 마라도나도 "부시를 '인간 쓰레기'로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과 충돌해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 예상된 실패=부진하게 이어져온 사전 협상 과정을 감안할 때 회담 실패는 충분히 예상됐었다. 사사건건 미국과 충돌해온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남미 정상들이 노골적인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차베스는 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FTAA를 매장하기 위해 왔다"고 선언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이 FTAA의 조속한 체결을 위해 중남미 국가들을 압박하면서 현지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며 "지난 5년간 부시가 고집해온 일방주의 대외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뉴욕=남정호.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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