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게으른 하나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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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호 27면

우연히 인터넷에서 ‘게으르다’란 단어를 검색하니 누군가 “하나님은 게으르다”는 그림을 올려놓은 것을 보았다. 대담한 생각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바라는 것,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나님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인간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하나님이 기꺼이 돕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예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지만, 반면에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세상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느낄 때 하나님이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나이가 100세가 다 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할 때 아마도 하나님이 당신의 약속을 잊으셨든가, 계획이 바뀌었든가, 아니면 게으르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을지 모른다.

일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유능한 사람일수록 일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기계가 사람보다도 일을 더 빨리 처리한다. 월가에선 컴퓨터가 주식 사고파는 일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한다. 이미 인간은 하나님이 해 주기를 바랐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일을 스스로 처리한 지 오래되었다. 인류의 정치·사회적 변화도 그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주지 않았기에 사람의 손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 공산주의의 실험이며, 하나님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 주지 않았기에 사람 손으로 현대 복지사회를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듯, 인간이 하나님을 점진적으로 대체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일하시니 당신도 일한다”고 하셨다. 성경을 읽는 이들은 이 구절을 묵상해야 된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신다는 말인가. 여기에 중요한 비밀이 있다. 인간이 자기의 요구와 생각과 기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하나님은 게을러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은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관점이란 무엇인가. 그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한다. 하나님이 한결같이 해 오신 일은 인류 구원이었다. 하나님의 주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잘살 수 있을까 하는 게 아니었다. 문물이나 과학을 발전시키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그 모든 건 인간의 관심사였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셨지만 가난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병자를 고쳐 주셨지만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하지는 않았다. 억압받는 이들을 위하셨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 투쟁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관심사였지 예수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인간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목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심사가 이런 데에 있지 않으니 우리도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까. 그건 아니다. 인간에겐 많은 권한과 재량이 있다. 동산의 모든 실과를 임의로 먹으라고 하신 것과 같다. 사람은 많은 일을 할 능력이 있으며 권한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떠나간 인간을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김영준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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