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2)평화선 선포-제80화 한일회담(4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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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대표단은 정부의 평화선 선포를 동경에서 맞았다.
평화선이 선포된 1월l8일은 마침 회담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사흘전 국무회의에서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선언」, 즉 평화선 선포를 의결한 사실을 알고 있엇다.
『올것이 왔구나』했지만 회담에서 일본측이 펄펄 뛸 것을 생각하니 미상불 대처전략수립에 부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조야는 이 소식을 듣고 벌컥 뒤집혔다.
일본의 반발을 예상 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 민감한 충격파는 의외로 거셌다.
「공해의 자유를 완전 무시」 「한국, 어업교섭에 선수치다」등 대문짝만한 일본언론의 표제는 그래도 점잖았다. 「오만무례하고 불손한 한민족」 「한국의 해양주권선언은 영토침략」 「재일 한국인을 모조리 추방하라」는 감정 실린 성토가 각처에서 빗발쳤다.
일본언론의 앞장으로 평화선 선포를 규탄하는 항의집회와 시위가 일본 각지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일강화조약의 발효와 동시에 이루어질 「맥아더선」의 철폐를 눈앞에 두고 기뻐 날뛰던 일본어민들은 그들 정부에 대해서도, 아우성을 쳤다.
한일회담에 나은 일본대표들은 본 건은 제쳐두고 『평화선 선포야말로 한일회담의 성공 기초를 파괴하는 행위』 『한국 측이 과연 한일회담을 계속하려는 성의가 있는지 묻고싶다』는 등 위협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쏟아 놓았다.
과연 그들의 기분으로는 그럴만도 했다. 일본으로서는 말하자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인 셈이었다.
당시의 국제법상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일본사람들은 생각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우리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점령군(미국)도 인정한 공해의 자유를 빼앗아가다니…』 『전쟁으로 폐허가 돼버린 보잘 것 없는 나라가 감히 대국일본의 해양진출을 막다니…』 라는 것이 일본인들의 심정이었다.
한국의 평화선 선포를 얼마간 관망의 눈으로 지켜보던 몇몇 우방들까지 선포 20여일이 지나면서부터 공공연하게 한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맨 먼저 미국이 『한국정부가 일방적으로 공해상에 설정한 독점 수역은 부당하다』고 일본 편을 들고 나왔다.
이어 6월에는 자유중국이, 이듬해 1월에는 영국이 한국의 평화선 선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얼마간 국제적 비난의 표적까지 된 셈이었다. 현실적으로 평화선 선포는 적어도 일본어민들, 특히 서일본측에는 생활문제가 달린 사활선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 정부는 남의 나라 어민은 어떻게되건 말건 국제관례에도 없는 횡포를 저질렀단 말인가.
우리대표들은 매일같이 실리는 일본어민들의 항의시위와 일본언론의 비판기사를 읽으면서 이 문제에 관해 자주 얘기했다.
대표단들이 통쾌감 반, 걱정스러움 반의 심경으로 이 문제를 거론할 때 특히 평화선의 필요 불가결한 정당성을 열을 올려가며 역설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상공부 수산국장으로 선박회담의 멤버이자 평화선 선포의 맨처음 실무기초작업을 맡았던 차철근씨가 그 장본인이다.
차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일본어부들의 한국내 수역에서의 불법 어로는 극에 달해 있다. 45년 패전당시 1백82만t에 불과했던 일본어획량이 50년에는 3배 이상이나 늘어났다. 일본은 자기네 연근해에서의 어족 고갈현상 때문에 한국 쪽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6·25동란으로 우리 정부나 어민이 어업에 신경을 쏠 여지가 없는 틈을 타 일본은 우리 어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일본은 어선단을 형성해 제주도·흑산도 어디 갈 것 없이 한국어장을 마치 자기집 안방으로 알고 남획을 일삼고 있다. 어민들 얘기에 따르면 그 수역에는 일본의 야간 어로 선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힘이 없다고 이런 행위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저들의 행위를 계속 방치한다면 아마 한국 연근해 어장은 조만간 씨가 마를 것이다.』
차대표의 흥분된 이야기는 계속됐다. 『해양주권을 선포한 나라가 국제적으로 우리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 미국도 했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정부의 이번 조치는 일본의 어로작업을 완전 봉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평화선 선포는 일본의 남획으로 인한 어업자원 고갈을 막기 위한 해양자원 보호조치라는 차원에서 이해돼야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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