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팀에 바란다|담장ㅇ보다 먼저 지붕손질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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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붕이 새어 서까래가 젖을 판인데 대문을 고치거나 담장칠을 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대문이나 담장은 약간 늦게 손질해도 문제가 없지만 지붕고치는걸 늦추면 대들보가 썩을 우려가 있다.
형편이 어려워 빚을 지면서 잔치를 자주 크게 벌이는 것도 우습다.
손님 잘 치러서 나쁠게 없다지만 그것도 형편 보아가며 해야지 지나치면 오히려 체신이 없어진다.
소 잡는데 닭칼쓰고 닭 잡는데 소칼쓰는것도 우습다.
일이 넘치거나 모자라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일엔 순서가 있고 알맞는 크기가 있다.
그 순서를 바꾸거나 크기가 적당치 않을 때 자꾸 일이 꾄다.
안 생길 일이 생기고 사소한 일도 크게 덧나는 것이다.
새 경제팀이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바로 일의 순서와 크기를 가늠하는 일이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한지를 잘 알아 지금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안 해야 하며 한다면 어느 크기로 해야하는지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 정하는것도 목자가 어린양들을 몰듯 그냥 따라오라고 해서만은 안된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널리 알린 다음 중지를 모으고 합의를 얻어야한다.
마음 터 놓고 따라만 갔다가 낭패본 것이 어디 한 두번인가.
과거 중화학공업을 한다고 시퍼렇게 설치더니 그뒤치닥꺼리는 어린양들이 하고있다.
밑없는 독에 물붓는 식으로 들어가는 정부돈이나 은행돈이나 모두 어린양들이 부담해야한다.
해외건설만해도 신나게 나가고 신나게 늘리더니 요즘은 시한폭탄처럼 아슬아슬하다.
터졌다 하면 천억대라 와르르할까봐 겨우 얽어 놓고있는 실정이 아닌가.
저물가가 정착되어 물가오름세 심리는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아파트값이나 땅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은행신용카드니 가계수표니 하여 은행이용이 무척 편리해 졌지만 정작 소중한 은행공신력은 적색상태다.
벌써 1년여 사이에 세사람의 은행장이 구속되었다.
과거 누적된 적오의 현재화로 돌리고 안도하기엔 너무 불안스럽다. 「적오의 현재화」 가 언제 끝날지는 알수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값이 오르고 은행 공신력이 떨어지고 해외건설이 불안해도 경제지표엔 이상이 없다. 경제성장·물가지수·국제수지는 아직 장미빛인 것이다.
경제지표란 원래 경제실상을 나타내는데 한계가 있다. 경제지표에 적신호가 올땐 이마 늦은 것이다.
허위대가 좋다고 꼭 건강한 것이 아닌것과 같다.
겉이 멀쩡하다하여 자꾸 무리를 하다간 결국 낭패를 본다. 정말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체력을 생각하여 조심하고 분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경제증상은 한동안 잠복해 있다가 심각한 사태가 돼야 경제지표로 나타난다. 경제지표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쓰면 괜찮으나 그것을 과신하다가는 큰일난다. INS (자동항법장치) 만 믿고 계측을 게을리하다가 항로를 이탈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경제지표의 좋은 것만 보려 애쓰고 또 그것에 희희낙락하지말고 거기 안나타나는 증상들을 찾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제지표상으론 저금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명성·영동등 큰 금융사건마다 저금리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수기통장이나 지보어음등온 프리미엄 금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값을 억지로 늘려놓으니 물건값에 이중가격이 생긴것과 같다.
GNP추계에 안 나타나는 호사품조의 확산, 물가지수에 안 나타나는 부동산값이나 국제수지표에 안 나타나는 많은 외분잔고등이 잠복된 증상들이라 할 수있다.
기본골격이 멀쩡해도 이런 증상들이 쌓이면 체력이 쇠잔해질 수밖에 없다. 좋은것만 보이니 여러일들을 한꺼번에 벌일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용자원의 덩어리는 하나다. 경제 따로 있고 외교 따로 있고 체육 따로 있고 무슨 행사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용자원이란 저수지는 정해져있는데 해갈할 논밭은 많은 격이다.
어느 한쪽에 헤프게 쓰면 정말 필요한데 차례가 안간다. 선후와 적량을 잘 알아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수지를 실제보다 휠씬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경제증상을 외면한 채 나타난 지표들만 보니 저수량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좀 속된 표현으로 하면 「주제파악」 이 잘안되어 있는 것이다.
경제교육은 이점을 널리 인식시키는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새 경제팀도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실제행동으로 보여야한다. 담장·대문손질이나 잔치는 좀 미루고 지붕부터 고쳐야하는 것이다. 우리의 분수에 맞게 모든 일을 빠듯하게 해야한다.
그동안 우리처지를 모르고 약간 들뜬 데가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갑자기 진정시키려면 고통도 많고 반작용도 많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전체적인 나라자원의 적정배분이 가장 시급한 때다. 일체의 예외가 없어야한다.
신임 진의종국무총리나 강경식비서실장이 경제에 정통한 분들이므로 경제팀도 그 점에선 큰 원군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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