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5)-제80화 한일회담(34)선박위원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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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선박위원회 1차회의는 51년 10월30일 상오10시 일본 운수성대신 응접실에서 개막됐다.
우리측에서는 홍진기법무국장이 수석대표로, 황부길(당시 해운국장)·문덕주(해운국감리과장)·지철근(수산국어로과장)·한규영(주일대표부서기관)씨 등이 대표로 각각 참석했다.
일본측 수석대표는 천기외무심의관겸 배상청차장이었고 국안정일운수성해운조정부장·귀산신낭운수성총무부장·천모일낭운수성정기선과장·소산건일상담역등이 대표로 참석했다.
회의에 앞서 일본측이 먼저 자기네 대표를 소개한데 이어 우리도 갈홍기박사의 통역으로 대표단을 소개했다.
홍수석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서로가 자기나라 입장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타당한 논리를 갖고 회의에 임한다면 선박문제도 쉽사리 합의할수 있을 것이다. 선박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 한일국교확립에 초석을 놓자』고 제의했다.
홍수석대표는 또 『한국은 이시간에도 공산주의자들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민주주의의 보루』임을 지적, 『일본이 반환하는 선박은 공산주의자들을 막는데 쓰일 것이므로 일본도 같은 민주주의국가라는 공동운명체적 입장에서 협력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회담에 들어가자 우리측은 『한국은 이미 45년 8월9일 일본에서 이탈되었기 때문에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선적이 한국으로 돼있고 △그이후 선박 자체가 한국수역에 있었던 배는 자동적으로 한국소유』라고 강조했다.
홍수석대표는 이같은 우리입장의 근거로 회담의 의제는 ①SCAP(연합군 최고사령부)령 2168호에 의한 한국국적 선박의 반환 ②미군정법령 33호에 의한 45년 8월9일 이후 한국수역소재 선박반환의 2개항을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측은 애초부터 우리의 이러한 접근방식과는 거리가 먼자세를 취했다.
그들은 우선 우리가 제시한 의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일본측은 우리측이 주장한 의제 첫항, 즉 「SCAP영 2168호 이행에 관한 건」은 「선박반환건」이라는 명칭으로 수정, 변경해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들의 주장은 SCAP영은 어디까지나 SCAP과 일본정부간의 사항일뿐 한국과는 무관하므로 선박분과위의 의제가 될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이처럼 의제문제에서부터 트집을 잡고 나온 것은 다른 저의가 있어서였다.
우리측 주장대로 미군정법령 33호와 SCAP영 2168호에 근거해 의제를 채택할 경우 그들이 갖고 있던 한국국적 선박을 모두 반환해야하는 결과가 되기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뜻에서 의제를 「선박반환건」이라고 막연하게 표현하려 한 것이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선박반환문제에 대한 우리측 요구의 배경과 당시의 실정을 좀더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같다.
오늘날처럼 항공·육상운송이 발달하지못한 2차대전전후의 당시 물자운송수단은 해운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일제말엽의 기록으로는 2Ot이상의 조선적 등록선박이 모두 8백55척·10만9천7백t에 이르고 있었고 이가운데 외항선박은 6만t 정도였다.
그러나 일제는 전쟁중 우리나라 선박의 대부분을 징발해 전쟁물자 수송에 투입했고 그 결과 전쟁의 와중에서 대부분 침몰·파괴돼 해방당시 우리한테 남아있던 큰 배라고는 5척의 조선우선 뿐이었다.
그나마도 일본이 저들의 재산을 4척의 배에 싣고 일본으로 철수해버려 한국수역에는 1천5백t급 부산호 1척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해운이 완전 마비상태에 있을 때 주한 미군정당국은 45년 12월6일자로 미군정법령 제33호를 공포, 『45년 8월9일 현재 일본정부 소유의 국·공유재산과 사유재산을 모두 미군정에 귀속』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당시 해운재건에 뜻을 두었던 김룡주씨(초대 해운공사사장)등 몇이서 이 미군정법령33호를 근거로 미군정당국과 빼앗긴 우리 배들을 되찾기 위한 교섭을 벌였다.
또 백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일본이 끌고간 조선우선등 5∼6척의 선박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정부는 일본에 남아있는 우리 선박의 리스트를 작성해 미군정당국과 끈질긴 교섭을 벌인 결과 이듬해인 46년8월께 우선 이들 선박5척을 한국으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가져온 이 5척의 선박을 일본측은 그후의 회담에서 자기네 배니 반환해달라고 억지주장을 하게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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