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라운지] 다음 주 이임하는 산드베리 스웨덴 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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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빨리 한국을 떠나게 돼 많이 서운합니다. 본국에서 승진시켜 줄 테니 들어오겠느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제 머리는 '좋다'고 하는데도 마음은 '떠나기 싫다'는 쪽이었습니다."

하랄드 산드베리(55) 주한 스웨덴 대사가 만 2년 간의 한국 근무를 마치고 다음 주에 떠난다. 2003년 말 한국에 왔을 때 짧으면 3년, 길면 5년을 머무르려고 했단다. 한국은 그에게 각별한 나라였다. 외교관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이고, 첫 아이를 얻은 곳이었다.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았던 스물일곱살 청년 산드베리는 한국에 가겠다고 자원해 1977년 주한 대사관의 2등 서기관으로 부임했다. 79년 귀국한 그는 25년여 만에 50대 중년이 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도 자원이었다.

"한 나라에 두 번 근무할 수 있었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70년대의 한국과 2000년대의 한국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덕분에 외형적 변화뿐 아니라 내면적 변화까지 고루 볼 수 있었지요. 넓고 깊은 인간관계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을 제대로 보려고 애썼습니다."

산드베리 대사에게 한국은 '변화의 나라'였다. 모든 것이 빠르고 역동적이었다. 그는 창 밖을 가리켰다. "제가 2003년 왔을 때 막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새 시냇물이 흐르는 공원으로 바뀌었지요."경제성장.국제화 등이 진행되면서 외국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유연해진 것 같다고 했다. 70년대 근무 당시 강릉을 갔을 때였다. 수영을 좋아하던 그는 해변에서 별 생각 없이 수영복을 갈아입고 헤엄을 쳤다. 몇 분이 지나 해안가로 돌아와 보니 줄잡아 400여 명의 구경꾼이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물었다. 그는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했던 템플 스테이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네 번 방문한 해인사 못지 않게 한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스웨덴 친지들도 함께 데리고 갔을 정도였다. 용평 스키장은 스키의 나라인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달랠 수 있던 곳이었다. 지난 해 설에는 자녀 셋이 한국에 와 함께 용평에서 스키를 탔다. 올해 자신이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한 주한 외국인을 위한 스키대회도 그곳에서 열었다.

귀국 후 한국이 눈에 삼삼할 것 같아 9월 초에는 '고별 여행'도 다녀 왔다. 아내와 함께 지프를 몰고 서해안-남해안-동해안을 나흘 일정으로 일주했다. "다시 한국에 온다면 휴전선이 사라진 판문점을 가보고 싶습니다. 그때쯤에는 통일이 돼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초반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누구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이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대신 아무도 잊지 않겠다(Nobody mentioned, nobody forgotten)"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시 한번 물었다. "일 욕심 많은 대사를 위해 애쓴 대사관의 한국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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