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그냥 못 넘긴다" … 본회의 불참론 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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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 대해 “추가로 공개된 이 후보자의 녹음 파일은 총리 후보자의 발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며 “두 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로 이번에는 웬만하면 넘어가려 했으나 그럴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당 대표로서 인준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당내 문제에서 비교적 온건파인 주승용 최고위원은 “언론 외압 녹취록에서 드러난 이 후보자의 자질은 가히 공포 수준이다. 독재 시대를 연상케 하는 언론통제 수준인데, 이런 분이 총리가 되면 국민에게 재앙이며 흉기”라고 했다. 그는 “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했다.

 최고위원회의의 이런 기류는 당내에 확산됐고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사실상 인준 반대로 기울었다. 문제는 반대를 어느 수위로 하느냐다. 새누리당이 단독으로라도 표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야당의 반대 수위가 인준안 처리의 변수이기 때문이다.

 우윤근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오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인준 반대’가 당론으로 정해질 경우 어떻게 당의 전략을 짤지 의견을 수렴했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우리(새정치민주연합)가 지금 당내 사정상 바로 (본회의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새누리당에 본회의를 23~24일께로 연기하자고 제안했다”며 “(본회의가 12일에 열릴 경우 참석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단 새정치연합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본회의 등원 후 반대 표결 ▶본회의 표결 불참 ▶본회의 연기 등이다. 하지만 11일 오후까지 당론이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은 상태다. 새정치연합 원내지도부는 상대적으로 이 후보자에게 호의적이지만, 당내 지도부는 입장이 강경하다. 12일 오전으로 예정된 인사청문특위의 경과보고서 채택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주 최고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12일 본회의에 참여해 투표해야 한다. 새누리당 의석수가 우세하다고 해 국민 여론을 무시한 채 마냥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키기는 힘들 것”이라 고 주장했다.

 반면 다수 의견은 본회의 참석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쪽이다. 익명을 요구한 핵심 당직자는 “새 지도부 출범 전부터 이 후보자에 대해 반대한다는 당내 의견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며 “인사청문특위 절차에 따라 검증을 마친 만큼 이제는 국민 여론과 함께 본회의 불참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본회의 자체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 대표의 ‘호남 총리론’ 발언에 이어 이 후보자까지 낙마할 경우 충청 민심이 흔들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사청문특위 야당 간사인 유성엽 의원은 “특위위원들 중에는 ‘급한 건 저쪽(새누리당)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설 연휴 이후로 본회의를 연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12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초선 의원은 “문 대표 취임 이후 첫 의원총회인데 시험에 들게 됐다”며 “새 지도부가 난상토론을 어떻게 수렴해 전략을 만들어갈지 모두가 지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 총리인준안은 문 대표로서도 시험대인 셈이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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