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6)예비회담(3)-제80화 한일회담(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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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본회담의 의제를 결정짓기 위한 2차예비회담은 22일 상오 10시 회담장소를 미쓰이(삼정)빌딩으로 옮겨 속개됐다.
역시 이 회담에도 SCAP의 「시볼드」외교국장이 입회했다. l시간40분가량 진행된 회의에서 우리측의 양유찬수석대표는 예의 다소 고압적인 자세로 『일본측은 가면없는 솔직한 태도로 회담에 응하라』고 촉구한 다음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의 합법적 지위부여 △선박반환 △기타 의제의 확대 및 이를 위한 구체적인 협의방법 등 3개항을 의제로 정식제의했다.
일본측은 재1 및 제3항의 의제채택에는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선박반환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채택여부를 검토중이며 정부의 훈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모호하게 답변했다.
일본측이 선박반환문제에 대해 별로 탐탁지않은 태도를 취하고 나온 것은 기실 다른 속셈이 있어서였다.
일본측은 재일동포 문제만으로 회담을 진행시키고 나머지 문제들은 미일강화조약 발표이후, 그러니까 그들이 독자적인 외교권을 행사할수 있는 52년 2월이후에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다루어 나가겠다는 계산이었다.
나중에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우리가 제시한 선박문제는 ①51년 9월11일자 SCAP당국의 대일지시각서에 의한 한국국적의 선박반환건 ②45년 8월9일이후 한국수역에 있다가 일본이 가져간 선박귀속건 등 2개항이었다.
일본측은 우리가 SCAP의 지시각서에 덧붙여 일본식민지로부터 이탈을 선언한 8월9일 이후의 우리 수역내 선박중 일본으로 가져가버린 문제까지 들추어내는데 대해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SCAP이 선박반환에 대한 우리의 의제채택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측은 할수없이 응한다는 분위기였다.
이런 배경이 깔려 있기때문에 일본측은 도리없이 회담에는 응하면서 정부의 훈령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시간을 벌어 SCAP측과 별도 교섭을 갖고 SCAP의 복안을 타진하는 한편 그에따라 회담에 응하는 한계를 결정하려는 속셈이었다.
일본측 제의로 23일 하루를 쉬고 24일 속개된 3차예비회담에서도 일본측은 의제결정에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전날과 똑같은 이유를 내세워 합의를 피했다.
이에 양수석대표는 다시한번 일본이 성의있는 태도로 임해줄 것을 촉구하면서 선박반환건은 이미 SCAP측에 의해 명백하게 회담의제로 지정된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이같은 작은 줄다리기끝에 일본측은 결국 25일 열린 4차예비회담에서 3개항의 의제채택에 동의했다.
동시에 △재일동포 법적지위 △선박반환문제에 대한 전문적 협의를 위해 실무분과위를 구성하는데도 합의했다.
2개 실무분과위는 실제로 30일 5차예비회담과 병행해 첫 모임을 갖고 재일동포문제 및 선박문제의 구체적 협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본측은 25일의 4차예비회담을 끝으로 연휴가 끼어 있으니 29일까지 회담을 쉬자고 제의해왔다.
우리 또한 30일부터 시작될 2개실무분과의에 대비해 다소 시간을 얻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대신 우리들은 일본언론들이 고의적으로 회담을 묵살하고 있는데 대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겸해서 26일 양수석대표가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양수석대표는 주일대표부에서 가진 이 기자회견에서 우리말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가며 지금까지의 회담 경위를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응했다. 양수석대표는 미리 준비한 인사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확대돼가는 공산주의자들의 침투에 공동으로 대항해야한다. 현재 한일예비회담은 원만히 진행되고 있으나 토의되고 있는 제반사가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다소의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불가눙한 요구를 하고있는 것이 아니다. 상호간의 이익과 전반적인 극동평화와 이익을 위해 일본정부가 보다 성의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기대한다』고 그간의 경위를 밝혔다.
회견장에는 지금은 언론계의 원로로 나와도 평소 교분이 두터운 홍종인·우석찬씨 등과 AP 등 낯익은 외신기자들의 면면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일본기자들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내게는 그런 일목언론들의 태도가 마치 일본정부의 이번 회담에 응하는 기본자세와 맥을 같이하는 것같아 회담의 전도가 순탄치 않으리란 느낌을 더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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