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거슬리는 직장 동료가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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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

Q (기분 맞추기 어렵다는 30대 여성)저는 30대 직장 여성입니다. 10명이 안 되는 작은 회사에 8년째 근무 중입니다. 제 고민은 저보다 나이 많은 40대 여성이 항상 거슬린다는 겁니다. 자기가 기분이 나쁘면 누구랑도 이야기를 않습니다. 최근에도 사장에게 한소리 듣고 나선 일주일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이런 행동이 신경 쓰이고 눈치가 보입니다. 8년을 같이 근무하다 보니 처음보다 무뎌지긴 했지만 여전히 신경 쓰입니다. 그에 비해 전 활발하고 밝은 편입니다.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서로 즐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애도 많이 쓰는 편이고요. 그러나 한편으론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커 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

A (웬만하면 잘 지낼 것 같은 윤 교수)우리가 받는 스트레스의 9할 이상은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우선 내가 속한 조직과 나와의 관계 때문에 때론 속상하죠. ‘왜 이 조직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라고요. 그리고 오늘 사연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나는 잘하려고 하는데 저쪽 반응은 왜 저 모양일까’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힙니다. 오늘 사연도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스스로 자신이 이상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인간 관계의 갈등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 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갈등은 그 사람과 특별한 사이라는 증거일 정도로, 인간 관계가 가까워지다 보면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죠. 갈등이 없으려면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솔루션은 아니겠죠. 따라서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상이라는 증거겠죠.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쪽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의 마음에 관심 없고 무심하며, 심지어 자기 마음에도 무딘 것이니깐요.

 그럼 관계의 갈등은 왜 일어날까요. 우리 모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연의 두 분이 부딪히는 것도 서로의 스타일이 다른 거죠. 한쪽은 무뚝뚝한 사람이고 한쪽은 활달한 사람인 것입니다. 상대방이 좀 나에게 맞추어 주었으면 하지만 상대방의 성격을 바꿀 방법은 없습니다. 한번 정해진 성격은 상당한 안정성을 가져 평생 그 특징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관계 갈등의 또 다른 원인은 우리 안에 상반된 욕구가 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테두리를 지키려는 독립 욕구와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 친밀 욕구가 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까워지면 내 테두리가 침범되니 동시에 둘을 만족시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부부간 갈등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서로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서, 성격이 잘 맞겠다 싶어서 서로 선택한 부부 사이도 갈등이 있는데 다른 관계는 오죽하겠냐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서로 맘에 들어 선택한 건 아니죠. 유전자가 어떻게 조합되어 어떤 성격의 자녀가 나올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자녀도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형제 자매도 마찬가지죠. 하물며 직장 동료인 경우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계에 있어 갈등은 당연히 함께 존재하는 것이기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적정 거리의 관계가 섭섭하지만 최선의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2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두기

Q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표현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저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좋지 않으면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죄책감이 듭니다. 그래서 더 웃고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행동이 저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열심히 해도 반응이 없으면 죄책감이 짜증으로 바뀌고 화가 나면서 미워하게 됩니다. 적정 거리는 어떻게 유지하는 것인가요.

A 관계에 있어 ‘적정거리(optimal distance)’ 유지 전략은 그 사람이 당겨도 너무 들어가지 않고 비난해도 너무 멀리 가버리지 않는, 그 라인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심리치료의 한 방법론입니다. 요즘 말로 밀당의 기술과 다소 비슷한 면이 있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 안에는 친밀의 욕구와 자유의 욕구가 함께 존재하기에 내 마음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갈등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랑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유지하고 싶은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가 어렵습니다.

 적정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깡을 키워야 하는데요.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더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를 다 채워주지 않고 견디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잘할 때 잘 받아주지 않는 사람도 짜증나지만, 너무 달라고 하는 사람한테 질린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과하면 관계는 힘들고 깨지게 됩니다. 약간 부족한 듯, 심심한 관계에서 좋은 기억을 공유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과거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일 뿐

Q 깡을 키우는 마음 훈련이 필요하군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관계에 예민한 게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제가 3남매의 둘째인데요. 엄마는 오빠를 그렇게 챙기시고 아빠는 막내 딸만 귀엽다며 예뻐하셔서 속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제 머리에서 맴돕니다. 그런데 다 자란 이제는 부모님의 생일이며 명절을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은 저입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콤플렉스 때문에,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제가 잘하니 이전보단 저를 많이 두둔하시긴 하지만 여전히 오빠와 제 동생을 더 반기시는 느낌입니다. 이런 트라우마가 모든 사람에게 잘하려고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A 트라우마, 심리적으로 충격을 준 과거 사건의 기억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마음 치료에 있어 트라우마 이론이 무척 중요하다고들 생각하는데 반대로 트라우마는 없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이는 트라우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를 다루는 하나의 전략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트라우마 이론이 널리 퍼지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내가 오늘을 잘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반대로 내가 오늘을 잘 못사는 건 이 트라우마의 영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보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너무 신경을 쓰는 강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오늘을 잘 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트라우마 이론이 오히려 현재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죠. 실제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짝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트라우마에 집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종의 핑계죠. ‘과거의 이런 트라우마 때문에 현재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과거의 슬픈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고,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숨어 버리면 현재가 더 갑갑해져 버립니다.

 ‘트라우마는 트라우마일 뿐’이라는 생각을 권해 드립니다. 트라우마와 자꾸 연결을 지으면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이 더 커지고 뇌도 피로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트라우마와 없애기 위해 싸우지 마시고 ‘그냥 데리고 살자’ 마음 먹을 때 부정적인 감정이 오히려 쉽게 줄어듭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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