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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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넓은 초원을 힘차게 달리는 준마들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후련해진다. 잃어버린 원시에의 향수랄까, 야성에 젖은 기마생활의 회상이랄까. 어쨌든 마음속에 광야가 펼쳐지는 기분이다. 전세계 1백여개국에서 경마가 성업을 이루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울 뚝섬경마장에서 승부를 조작했다고 관중들이 난동을 부린 것은 우리에게 두가지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는 어느새 경마가 우리의 레저생활에서 큰 몫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 또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마장에선 종종 사기극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
사건의 경위는 단순하다. 관중들이 대부분 기대를 걸었던 말들은 하위로 처지고 예상외의 말들이 1, 2착을 차지했다. 여기에 마권을 건 사람들은 수천명의 입장객중 불과 48명. 1천원짜리 마권에 64만원씩의 배당을 받아 횡재를 했다.
경마 배당금의 원리도 지극히 간단해서 속된 말로 「돈놓고 돈먹기」다. 1등을 맞힌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돈을 따먹는 것이다. 자연히 1등을 맞힌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배당금은 많아진다. 따라서 만약 승부조작이있다면 이기는 기수, 져주는 기수, 엉뚱한데 1등을 거는 베일속의 관중등 삼자사이에 이루어진다.
여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단방식·연승식·복승식의 세가지 맞히기 방법을 적용한다.
단승식은 1착 한마리만 맞히는 것, 연승식은 1,2, 3착중 1마리만 맞히는 것, 복승식은 1, 2착을 순서에 관계없이 맞히는 것이다.
경기가 과열될수록 승부조작의 부정이 일어나기 쉽다. 80년4월엔 경마도박꾼이 기수를 매수해 우승예상마를 알아내다가 구속됐다. 과거에는 정치깡패들이 경마장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수치스런 역사에 비해 한국의 경마는 작년을 고비로 대중화의 기반을 잡았다. 연입장인원 56만명, 매출액 4백27억원, 고객 배당금 2백83억원이었다. 경주마도 올해중에 8백마리를 넘어셨다.
경마의 대중화가 촉진될수록 경마를 건전한 레저수단으로 즐기려는 정신이 아쉽다.
원래 경마는 애마정신을 보전키 위해 개발된 것이다.
영국에선 승마를 신사도의 하나로 쳤으며 지금도 고급취미의 한가지로 꼽는다. 혈통이 확실한 준마는 종마만도 2백80억원 짜리가 있다. 앱섬다운스에서 열리는 더비대회엔 여왕도 해마다 참관한다.
경마를 찬양하는 사람가운데 평론가 「R·제프리즈」가 있다. 말의 경주를 보면 『스텝초원을 달리는 타타르족의 힘이 내게 옮겨오는 것같다』는 감상을 적었다.
올바른 방법으로 즐겨야할 경마가 언제까지나 의혹의 그림자를 깃들일순 없다. 관중도 투기나 도박보다는 건전한 레크리에이션의 방법으로 경마장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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