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때문에…] 고민 깊어가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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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28일 오후 10·26 재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 일괄 사퇴를 선언한 뒤 국회의사당을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조용철 기자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28일 청와대의 오후 2시 브리핑은 취소됐다. 40분 뒤 터덜터덜 기자실에 들른 김만수 대변인은 "뉴스를 봤지만 특별히 지금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도 소식을 알고 있지만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며 "조금 더 상황을 봐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29일로 예정된 노 대통령과 당정청 지도부의 만찬에 대해선 "특별한 변동이 없다"며 "문희상 의장도 올 것"이라고 했다.

오후 4시쯤 이병완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시간이 필요하며 정기국회에 산적한 정책 현안들은 차질 없이 처리돼야 한다"며 "열린우리당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청와대는 종일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여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전날 10.26 재선거 참패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며 "열린우리당은 동요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결국은 안이한 상황 예측이었다. 의원들의 거센 울분 속에 여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하는 등 여권은 거꾸로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속수무책의 정황은 청와대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통령이 여권을 통제해 나갈 강력한 수단인 지지층의 표는 이미 두 차례의 재.보궐 선거에서 효용이 떨어져 있음을 드러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 공천의 영향력 행사를 포기한 마당이라 현 대통령 임기 후에 총선을 맞게 될 여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장악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여당 지도부 퇴진 이후의 대안도 신통치 않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기국회가 진행 중인데다 북핵, 국민연금 개혁 문제로 당장 정리는 어려운 처지다.

여권은 지난해 3월 당정 분리라는 명분을 위해 정무수석제를 폐지하면서 이 같은 여권 안의 돌발 위기를 풀어갈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날 오후 4시까지 별다른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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