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재벌 듀폰은 왜 레슬링 선수를 죽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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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스캐처’ 중 88년 서울올림픽 레슬링 경기 장면. 듀폰(왼쪽 위)과 데이브(오른쪽)가 선수 마크(왼쪽 아래)를 보살피고 있다. 듀폰은 10여 년 뒤 데이브를 살해한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미국의 화학 재벌 존 듀폰은 자신이 후원하던 레슬링 선수 데이브 슐츠를 왜 죽였을까.

 5일 개봉한 영화 ‘폭스캐처’(베넷 밀러 감독)는 199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발생한 존 듀폰 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레슬링 영웅으로 불린 슐츠를 억만장자 존 듀폰(당시 57세)이 38구경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슐츠를 살해한 듀폰이 48시간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이 TV로 생중계 됐다. 살해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폭스캐처’는 듀폰의 살해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정밀한 대답이다. 영화는 87년 데이브(마크 러팔로)의 동생 마크(채닝 테이텀)가 듀폰(스티브 카렐)의 전화를 받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마크 역시 레슬링 선수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마크에게 형 데이브는 부모이자, 하나뿐인 친구이자, 레슬링 코치 같은 존재다. 마크는 그를 후원하겠다는 듀폰의 제안을 받고 그의 농장에 들어간다.

듀폰은 마크에게 좋은 친구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에게 코카인을 권하고, 자신의 명예를 내세우는 데 그를 이용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데이브가 88년 듀폰의 레슬링 팀 폭스캐처에 들어와, 듀폰과 마크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한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듀폰, 마크, 데이브 세 인물의 성격과 갈등을 꼼꼼히 살핀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나은 형을 한 번쯤은 앞서고 싶은 마크, 권위적인 재벌가에서 외롭게 자라 기이할 정도로 명예에 집착하는 듀폰, 동생과 팀원들에게 늘 믿음직스러운 지도자가 돼주는 데이브,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듀폰…. 그 복잡한 거미줄이 이 영화가 내놓는 해답이다.

영화를 연출한 베넷 밀러 감독은 지난해 9월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스러운 사건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부와 명예·계급·타이틀·특권 의식 등 사건의 비밀이 계속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했던 ‘카포티’(2005), ‘머니볼’(2011)에 이어 그는 ‘폭스캐처’에서 그 누구도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했던 사건의 총체를 진득하게 그려낸다. 사건의 정교한 짜임을 통해 극의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는 그 특유의 연출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등장인물에 대한 값싼 감상이나 동정을 허락하지 않는 시선이 매력적이다. 그 연출력을 인정받아 22일 열리는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스티브 카렐)과 남우조연상(마크 러팔로) 후보도 냈다. 특히 듀폰 역을 맡은 스티브 카렐은 유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 왜 모두 그의 연기에 혀를 내두르는지 알게 된다.

장성란 기자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기괴한 톤의 실화 드라마. 스티브 카렐의 캐릭터 연기는 관객을 숨 막히게 한다.

★★★★(김세윤 영화저널리스트): 세 주인공을 꼭짓점 삼아 아주 기묘한 삼각형을 그려가는 134분. ‘감동’하기보다 ‘감탄’하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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