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새지도<30> 은행을 잡아라(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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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실물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을 둘러싼 갖가지 대형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경제범죄의 중심무대는 대부분 은행이었다. 은행창구에 다리를 놓아 서로 속고 속이는 사술이 횡행했으며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누워 떡먹듯 급조한 신흥기업들의 운명이 남가일몽으로 끝났다.

<속고 속이는 사술>
금융계에도 인사선풍이 몰아쳤음은 말할것도 없다.
지난 81년8월 특수작전을 위장한 사기범이 전화 한통화로 한은부산지점에서 2억원을 건네받은 사건이 발생했을때 모두들 어이없어했다. 관치에 길들여진 은행의 허점이 어디에 있는지 여지없이 드러났다.
어디 그뿐인가. 작년 3월에는 조흥은명동지점 차장 김상기씨 (원진그룹대표)가 86억여원을 축내고 자살했다.
이·장부부외 어음사기사건은 금융파동을 더욱 확산시켰다.
잊을만하면 터지곤하는 금융사건은 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데 비해 수법이나 원인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볼수 있다. 사건의 배후에는 정치권력을 위장했거나 실제로 비호를 받는 인물이 끼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위조 구실용 담보로 22억5천만원을 부정대출받았던 한독맥주사건이 발생한것은 76년의 일이다.
한독맥주는 75년 하반기부터 앞다투어 서울지점 개설을 서둘러온 지방은행들의 예금유치 경쟁을 교묘히 이용했다.
일정기간 예금거래를 해 신용을 쌓은뒤 가짜 주식을 내놓고 뭉터기 돈을 빼갔다. 경기·전북등6개 지방은행들은 독자적인 신용조사능력도 없으면서 대출과 지급보증을 남발했으며 한일·서울신탁은행도 같은 우를 범했다.
이 사건 당시 한일은행장이었던 윤승두씨와 신탁은행장이었던 심원택씨는 서울신탁은행과 조흥은행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긴지 3개월도 채 못되 물러나고 말았다. 이밖에 31명의 은행간부들이 무더기로 면직 또는 징계처분을 받았으며 전북·경기은행장도 퇴역했다. 시은·지방은행장의 경질은 설마하던 금융가를 깜짝 놀라게했다.
3년뒤에 일어난 율산사건은 충격파가 너무 커 해외에 진출해있는 기업의 수주나 수출업적의 선적이 취소되는 사태까지 빚었다. 국내은행의 지급보증조차 인정되지 않았다.
79년4월 창립 4년이 채못된 율산 (신선호) 외 14개 계열기업과 8천여 종업원이 공중분해되었을때 남긴 부채는 지급보증을 포함, 모두 1천3백억원이었다.
신씨는 회사 앞으로 나온 수출지원금융을 개인명의로 가지급받아 이를 다른 회사 주식대금 납부금으로 위장했으며 같은 방법으로 율산건설등을 설립하는등 의욕적으로 기업을 확장했다. 결국 자기 돈 한푼 없이 교묘하게 은행돈을 활용해 마치 물건 사듯이 척척 회사를 인수했다.

<은행돈을 제돈쓰듯>
율산의 주거래은행이었던 서울신탁은행은 홍윤섭은행장이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홍승환 제일은행장, 김정호 한일 은행장, 이경수 조흥은행장 등도 물러났다. 당시 농·수협을 제외한 l2개 금융기관중 산은·외환은을 제외한 10개 은행장이 자리이동을 했다. 금융사상 최대규모의 인사파동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때 장재식국세청차장이 주택은행장으로, 양윤세주미공사는 수출입은행장에, 송병순전매청차장은 신용금고이사장에, 재무부차관을 지낸 남상진중소기업은행장이 서울신탁은행장에,재무부 기획실장을거친 정재철신용기금이사장이 한일은행장으로, 관세정차장 출신인 박동희주택은행장이 중소기업은행장으로 나가는등 관료출신들이 전격적으로 금융계를 점령해버렸다.
율산쇼크로 만신창이가된 금융인들은 대들고 나설만한 쟁쟁한인사들이 피고입장에 있거나해서 그저 숨을 죽이고만 있었다.
은행경력이 별 볼일없어지고 관경력이 높이 평가되었다.

<10개 은행장이 들썩>
당시 김원기재무부장관은『공무원 출신으로서 은행책임자로 선출되였던 사람들의 경영실적이 우수하며 국내와 어려운 경영여건을 감안하면 신중한 은행출신보다는 공무원 출신을많이 기용하는것이 좋다』 고 설명했다.
시중은행중에서 『실적에 얽매이지 않고 착실히 여신관리를 했다』고 해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배수곤상업은행장은 율산사건외 뒷마무리를 위해 은행감독원장으로 발탁됐으나 4년뒤에 일어난 작년의 이·장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한 파도를 겨우 이겨냈다 싶으면 다음 파도가 몰려왔다. 작년의 어음사건-그것은 강풍을동반한 메거톤급 파도로 비교된다.『어음사건때는 모두 깜짝 놀랐읍니다. 자금에 쪼들려 은쟁마다 아우성인터에 힘깨나 있는 사람이 몇백억원의 예금을 한다니 안받을 은행 있겠느냐. 이철희씨가 사실상 일신제강의 회장으로 행세했으니 우리들은 모두 그런줄 알았다』 고 금융인 P씨는 그때의 일을 더듬었다.
임재수 조흥은행장이 이·장부부의 속임수에 깊이 빠진것은 그동안 죽 한은의 온실 속에서만 커온 탓으로 시중은행 사정이나 업계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몇백억 예금에 혹해>
기업의 거래형태나 그 성격을 한눈으로 잴수 있는 은행장이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감을 얼른 잡아 재빨리 손을 떼었을 거라는 것이다.
『대화산업을 거느린 이철희씨의 신용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작년 3월에 증권시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읍니다. 어느 증권회사간부는 분명히 「큰손」이 개입해 주식을 대량 사들이고 있음에 틀림없으며 그 사람이 약5백억원정도까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것 같다고 말했읍니다. 그사람이 바로 의문의 이씨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읍니다. 더우기 「큰손」 은 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사기만했지 절대로 팔지 않았읍니다. 이러니 이씨에게 신용을 안줄수 없었지요.
그러나 이·장부부는 그주식을 몽땅 장외거래하고 있었읍니다』이 사건에 관련된 H씨는 혀를 내둘렀다. 말하자면 어음사건은 이·장부부의 비상식적인 대담성에 은행과 관련 기업들이 허를 찔린셈이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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