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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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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월17일.
밤사이에 폭우가 쏟아져 땅이 온통 진수렁이 됐다. 우리는 초조했다. 병사들은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참호속에서 싸웠을것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날씨까지 차가와진다. 수용소의 불쌍한 난민들은 제대로된 거처조차 없는데- 어디를 봐도 고난뿐 정말 형용하기조차 힘들다.
「폴린」박사가 오늘(일요일)기지예배당에서 강연한다고 「월리엄」 박사가 알려왔다. 두사람은 지난15일 함께 도착했다. 대통령은 그곳에 가기 앞서 최근 상태가 좋지않았던 비행장일대의 도로를 직접 살펴보았다. 간밤의 비로 흙이 더 파이고 씻겨나갔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군, 전쟁의욕 없어>
비행장엔 부산시장과 마침 이곳에와있던 이기붕씨 (당시 서울특별시장)가 함께갔다.이들은 도로형편을 본후 젊은사람들을 몇 불러 길을 우선 쓸만하게 고치도록 했다. 보수작업은 이시간까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오후에 미군후송병원을 찾아 미국인부상병들을 위문했다. 미군부상병들은 정기적으로 일본에 보내지기때문에 환자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부상병들은 싸우는뎨 대한 관심이나 열의가 거의 없어 보였다.
자신들이 무엇때문에 누구와 싸우고있는지는 모두들 알고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는건 빨리 싸움이 끝났으면 하는I인간으로서 가장 자연스런- 소망이다.
하긴 누군들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얼른 나아서 전선이 돌아가 다시 싸울수 있기만을 바라는 한국군 장병들과 이들을 비교할 수는 물론 없다.
적을 섬멸하는 것이 목표라는데선 우리군인들이나 미군들이나 다를바 없다. 단지 차이라면 한국군인은 직접 적을 무찌르고 싶어하는 반면 일부 미국뱡사들은 나 아닌 누군가가해주기만을 바란다는 점이 아닐까. 부상병들의 대부분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증원군이 올때까지 적을 치지는 말고 수비만하라고 명령받았던 바로 그 「이름난」부대원들이다.
물론 이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많을게 틀림 없다. 그런 군인들은 지금 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헬렌에 개구리 장난>
9월18일.
하늘이 마침내 갰다. 오가는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전선의 우리 부대들을 위해 반가운 일이다.
「월리엄」박사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무초」대사도 초대했다. 오찬도중 미대사관직원이 「무초」 대사를 불러내 대사는 잠시 자리를 떴다.
하오4시, 대사는 우리에게와서 「맥아더」장군으로부터 온 전문을 보여주었다. 대통령부부와 국무위원들은 목요일(주=9월21일)혹은 며칠쯤 더뒤에 서울로 떠날 수 있을 것이란내용이었다. 정말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가슴이 벅차선지 누구도 말문을 거의 열지 않았다.
이 얘기는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어느틈에 부산시내에는 우리가 내일 상경한다는등 갖가지 소문들이 나돌았다.
유엔군 장병들을 위문하러갔던 「헬렌·킴」 (김활난박사) 이 오후에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갈수 있게 됐다는 희망과 기쁨에 가득차 우리는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헬렌·킴」은 돌아가려고 현관에서구두를 신다 질겁을 하고 놀랐다. 발에 꿈틀하는 감각과함께 조그마한 개구리한마리가 뛰어올라왔기 때문이다.「헬렌·킴」 이 돌아간뒤 대통령은 웃으며 『마미, 누가 「헬렌」 에게 그런 장난을 했는지 아무도 못알아 맞히겠지?』 하며 재미있어했다.

<서울엔 시가전 한창>
나는 누구의 장난인지 알고있었지만「헬렌·킴」은 내가 입을 열지않는한 짐작도 못할것이다.
나는 환도 (환도) 하기전에 파우치를 준비해 보내려고 부지런을 피웠다. 대통령은 여러날만에 편하게 잠을 이뤘다.
9월19일,20일.
우리 머릿속엔 온통 환도생각뿐이다. 경호경찰중 일부는 선발대로 배를 타고 떠났다. 주위에선 대통령에게 서울로 돌아가더라도 경무대는 경비하기 힘들고 적이 지뢰같은걸 파묻었을지도 모르니 그곳에 거처하지말라고 건의도 했다. 서울소식에 접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라디오뿐이다. 대통령은 환도후발표할 성명문을 초했다. 한국어원문을 파우치에 넣어 보냈다. 영문번역본은 요약됐기 때문에 빠진부분이 좀 있다. 모두들 목요일에 출발할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9월21일.
「무초」대사가 상오11시쯤와 그들이 작성한 명단을 대통령에게 알려주고곧 환도문제에 관한 전문이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워싱턴이 「노블」참사관의귀국을 요청했다고 전했다(이에앞서 우리는 대사에게 「노블」 참사관을미국에 보내 유엔한국대표단을 돕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었으나 거절당했다) .우리는 곧 미국의 장대사에게 연락했으나 알고보니 결정이 바뀐 모양이다. 대사관에 손이 크게 모자라기 때문에 「노늘」을 보낼수 없다고「무초」대사가 생각을 고쳤다고 한다.
점심후에「노블」참사관이와서「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온 전문내용을 전했다. 환도는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망했지만 서울에선 아직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쩔수 없다. 정부가 돌아가기 전에 치안이 확립되는게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법과 질서가 없으면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군, 서서히 진격>
하오2시에 국무회의가 열렸다. 4시엔 제1부두에 나가 17연대를 전송했다. 목적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천이나 옹진쯤으로 추측된다. 곧이어 우리는 한국군 여군훈련병들을 사열했다. 전선에 나간 남자군인들을 대신해 후방일을 볼 튼튼한 젊은 여성들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여군이 고생은 되겠지만 두루 도움은 될듯하다.
사열후엔 비행단브리핑에 갔다. 왜관지역에서 적 탱크 여러대를 또 발견했으나 정찰기가 돌아다니다 놓쳐버렸다고한다.
아군은 서서히 밀어올라가고 있다. 일부 부대들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진격할수도 있지만 작전상 보조를 맞춰 움직여야한다. 전선의 맨가운데를맡은 한국군부대들은 중장비가 별로없어 기동성이 높은 반면 동해안쪽의 미군들은 무거운 장비와 무기들 때문에 속도가 늦을수 밖에 없다.
노량진까지 진출한 미제1해병연대병사가 파괴된 한강철교너머의 서울을 살펴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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