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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관련 독자 오해 없도록 좀 더 엄격하게 보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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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태생과 오래된 계열관계 때문이겠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중앙일보가 삼성과 특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중앙일보가 싣는 삼성 관련 기사들은 이러한 특수관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다.

한국 최고의 신문이 되기를 원한다면, 중앙일보가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 중 하나는 이러한 독자들의 인식을 깨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은 삼성 관련 기사들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최근 금융산업 구조개선법 등 삼성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와 이러한 관점에서 눈여겨볼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기사와 칼럼들이 게재됐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기사에서 최대한 독립적으로 기사를 쓰려는 중앙일보의 노력을 발견했다. 한 예가 10월 4일 칼럼이다. '삼성으로서는 모든 것이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삼성이 억울해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필자는 그 이유가 삼성 사람과 일반 국민의 시각차에 있다고 설명하며 삼성에 '더 성실하고 엄격해'지기를 요구했다. 6일자 사설도 삼성은 '대한민국 1등 기업이자 글로벌 선두기업으로서의 체모에 걸맞게 책임과 도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말들은 눈치 보면서 하기는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7일자 한 기사는 두 가지 면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삼성 '똑 부러진' 해법 없어 고심"이었다. 금산법 개정 등 악재가 겹친 상태에서 여권과 시민단체가 압박하자 해결책 찾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삼성 그룹의 움직임을 정리한 기사다.

이 기사가 부담스러운 첫째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삼성 측의 변명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사면초가''십자포화''고립무원' 등의 4자성어로 삼성 본관의 분위기를 요약하며 시작한 기사는 쟁점들을 거론하며 각 문제에 대한 삼성의 입장을 제시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삼성이 '사회공헌을 대폭 늘리고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선택 가능한 모든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힌다. 어떻게 봐도 독자 설득을 위해 기획된 삼성을 위한 변명으로 읽힌다. 그러한 취지라면, 사실 기사의 형식이 부담스럽다.

둘째 문제는 취재원이 모두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점이다. '삼성 관계자'와 '삼성 일각'으로만 표현된 취재원들이 누구인지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말들은 삼성의 최고책임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국민에게 익명으로 애드벌룬을 띄우는 일은 정책당국자나 정치인들이 여론을 떠볼 때 사용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삼성과 중앙일보의 관계가 정부와 관변매체의 관계와 비슷해야 하는가. 독자에 우선하는 특별한 대상을 의식하면서는 일류 신문을 만들 수 없다. 세계 일류인 삼성과 한국 최고를 지향하는 중앙일보는 각자의 길을 '더 성실하고 엄격하게' 갈 수 있어야 한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