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트럭 공급과잉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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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사태로 빚어진 물류대란이 노정 간 협상 타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노정 합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사태를 불러온 본질적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이 없이 오히려 문제를 장기적으로 악화시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어서 걱정된다.

이번 물류대란은 중앙일보가 14일자 보도에서 정확히 지적한 바와 같이 물류 운송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발생한 전형적인 시장 불균형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 전국의 육상운송 물동량은 겨우 9% 늘어난 데 비해 같은 기간 사업용 화물차는 54% 늘었다. 화물차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다해진 것이다.

지입차주들은 물량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고 이런 물량 부족의 해결사로 알선업자가 등장하며 그에 따라 운송수입은 낮아지는 구조가 됐다.

시장원리에 따르면 공급이 수요에 비해 커지면 가격은 떨어져야 정상이고 가격이 낮아져 수익성이 맞지 않게 되면 사업자의 일부가 사업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운송연대는 시장원리를 거부하고 우리나라 헌법보다 높다는 이른바 여론몰이법의 원리에 따라 집단행동에 들어갔고, 결국 원하는 대부분의 것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경제원리를 무시한 대가는 물류비용의 상승으로 기업과 국민이 치르게 됐으며 이대로 가면 장기적으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물류운송 문제는 근본적으로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요체는 물동량의 변화에 따라 화물차량의 수요와 공급이 비슷한 규모로 조정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업이 안될 경우 포기하는 퇴출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돼야 한다. 화물차 지입차주는 개인택시와 마찬가지로 차량을 사업수단으로 가진 독립사업자다.

사업자들의 수입은 근로자에 비해 변동이 심한 것이며 때로는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노정합의는 화물연대의 요구에 따라 사업자들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기로 함으로써 문제를 오히려 확대시키고 있다.

지입차주들이 근로자로 간주되고 이들이 노동 3권을 갖게 되면 운송시장에는 공급독점 카르텔이 만들어질 것이고, 시장의 퇴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갈수록 문제가 악화될 것이다.

둘째로 물류업계의 대형화와 선진화가 이뤄져야 한다. 90년대 이후 선진 각국은 다양한 물류혁신을 시도하고 그에 따라 물류비용을 현저히 절감하는 등 성과를 올리고 있다.

물류업계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새로운 정보기술을 시스템에 결합해 생산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물류예측 시스템을 갖춰 변화하는 물동량을 예측할 수 있어야 화물 운송인력의 수급 또한 예측 가능하고 그에 따라 신속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물류산업이 전문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 여러 가지로 중복돼 있는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할 것이며, 물류업의 대형화가 용이하도록 M&A 관련 세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서강대 남성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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