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비정년 교수' 채용 남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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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기간 중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재계약하지 아니할 수 있다'. 4년제 지방대인 M대가 올해 일부 계약직 교수를 뽑으면서 내건 계약조건이다. 지방 K대는 '임용기간은 1년으로 하며, 임용기간이 끝나면 피채용자는 당연 퇴직한 것으로 본다'는 문구도 교수 채용 계약서에 넣었다. 1년만 임용하고 다른 교수를 쓰겠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들이 이처럼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 계약직 교수를 대거 채용하면서 '교수직은 철밥통'이란 등식이 깨지고 있다. 교수가 되려는 박사 학위 소지자는 많지만 교수 채용문은 좁기 때문이다.

◆ '비정년 트랙' 교수 급증=대학가에서는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 계약직 교수를 '비(非)정년 트랙(track) 교수'라고 부른다. 비정년 트랙 교수는 2003년 연세대가 가장 먼저 도입한 뒤 그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이 최근 발표한 '대학 교원 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경우 2003년 말 238명이었던 비정년 트랙 교수가 올해 457명으로 늘어났다. 시행 대학 수도 2003년 17개에서 52개로 증가했다.

교수신문은 19일 "올 하반기 119개 대학에서 채용한 신임교수 1135명 가운데 173명(15.2%)이 비정년 트랙 교수"라고 보도했다. 이 중 홍익대는 올해 상.하반기 모두 128명의 신임교수를 채용하면서 105명을 비정년 트랙 교수로 뽑은 것으로 집계됐다.

◆ 악용되는 비정년 트랙 교수제도=비정년 트랙 교수제도는 도입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대학사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됐다. 현장을 잘 아는 실무형 인재가 강의를 맡아 생생한 강의를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이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 의원은 "대학들이 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비정년 트랙 교수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년 트랙 교수는 교육부에 보고되는 통계에서 전임교수로 잡힌다. 비정년 트랙 교수를 포함해 전임교수가 많을 경우 교육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비정년 트랙 교수의 근로 조건도 열악한 곳이 많다. 일부 대학의 경우 비정년 트랙 교수들은 정년 보장 교수 봉급의 절반가량을 받고 있다. 연구비를 지급하지 않는 대학도 적지 않다. 지방의 2년제 전문대 중 "학생 수가 줄어 강의를 맡기지 못할 경우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교수를 채용하는 곳도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김화진 대학지원국장은 "비정년 트랙 교수를 많이 뽑는 게 문제가 아니라 계약기간을 1~2년으로 한정하는 등 대학들이 이를 악용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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