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을 재선거는 '공공기관'과 '박근혜"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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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 사무실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 선거 사무실

이른바 노(盧)-박(朴) 대리전 양상을 띠며 10.26 재보선 최고의'빅 매치'지역으로 떠오른 대구 동을.

17일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와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 사무실이 자리잡은 방촌시장 인근에는 박빙의 승부답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난 주말 '박근혜 바람'이 휩쓸고 간 흔적은 뚜렸했다. 유 후보측은 기대감을, 이 후보측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시장 상인들사이에서도 박 대표가 앞으로 몇 번 더 이곳을 방문할지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이곳 선거전은 다소 기묘한 양상이다. 당사자인 이 후보와 유 후보 대신 선거전 전면에는'공공기관'과 '박근혜' 가 자리잡고 있다. 마치 공공기관과 박 대표가 싸움을 벌이는 형국이다.

두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걸린 대형 플래카드가 이를 상징한다. 이 후보가 "공공기관 동구유치"라는 약속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하는 반면 유 후보는 박 대표와 악수하는 사진을 전면에 내걸고"정권을 되찾아 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선거전략도 확연히 대비된다. 이 후보는 중앙당 이미지를 탈색시키고 철저히 지역선거로 몰아가겠다는 전략이다.

친(親)한나라, 친(親)박근혜 정서가 지배적인 이곳에서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봐야 유리할게 없다는 계산이다.

이 후보측 관계자는 "언론에서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인'대리전'으로 몰고가는 바람에 우리 후보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언론의 관심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박 대표와는 달리 언제 노 대통령이 이곳 선거에 대해 발언하거나 지원유세를 나온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노-박 대리전'은 실체가 없는 허구라는 주장이다.

반면 한나라당 사무실은 종일 중앙당에서 내려온 인사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대구에서 한 곳이라도 잃으면 이번 선거 뿐아니라 내년 지자체 선거와 대선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박 대표로선 모든 것을 거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구멍 하나가 댐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에 안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선명한 대립구도 탓에 유권자들의 관심도 타지역에 비해 높다. 심지어"선거에 관심없다"며 등을 돌리는 젊은층까지 "투표는 꼭 할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 지역에서 투표참여의사를 보인 유권자가 전체의 80%에 달해 전국 재보선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한나라당이 해준게 뭐 있노"=동을 선거구는 대구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꼽힌다. 이때문에 한나라당 관계자들조차 이 후보측의 공공기관 유치 공약의 파괴력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대구시장을 지낸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대구 달서을)은 "이 곳은 그린벨트와 비행장, 상수원 보호구역 등 이중 삼중의 규제에 묶여 발전이 더뎠던 게 사실"이라면서 "지난 영천 선거때와 환경이 비슷해 열린우리당의 공약이 먹혀들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거리에서 만난 40대 이모씨는"주변에서 '한나라당이 그간 해준게 뭐냐'는 실망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이번에는 여당을 찍겠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서모씨도 "한번쯤은 다른 당이 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이강철 후보도 개인적으로 고생 많이 했고, 청와대 수석으로 있으면서 지역에 신경 많이 쓴 것은 사실 아니냐"며 이 후보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다른 목소리도 있다. 택시기사 한모씨는 "대통령도 공약을 뒤집는 마당에 청와대 수석출신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겠냐"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박근혜…."= 역시 최대 변수는 '박근혜 파워'다. 유 후보 측은 15.16일 현지 지원에 나선 박근혜 후보의 연설에는 매번 천여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든 노인들 중에는 "아이구, 불쌍해라"며 잠시 혼절하는 노인까지 있었다고 한다.

방촌시장 상인 이모씨도 "연설을 듣고 나서는 '그래도 박근혜를 봐서 한번 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전했다.

유 후보측도 기대감에 들떠있다. "초박빙의 팽팽한 싸움" 이라는 공식적인 반응과는 별개로 "이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안택수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은 "박 대표가 앞으로 이 곳을 몇번을 더 올지는 앞으로의 여론조사 결과가 결정할 것이다. 한번도 올 수 있고 두번, 세번도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아성이라는 대구경북지역의 재보선에서 연이어 쉽지않은 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두고 '박근혜호(號)의 미래'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회사원 서모(30)씨는 "한나라당과 박 대표에 대한 이 지역의 지지가 새로운 미래 등에 대한 희망보다는 '갈때까지 가보자'는 자포자기 심리가 배어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다"고 말했다.

대구=조민근.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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