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가 정체성에 혼란만 주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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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전쟁에 관한 강정구 교수의 발언이 초래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지적대로 한 "별난" 지식인이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이치에 닿지 않는 해석"을 한,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수 있는 사건이 이처럼 막가는 것은 왜일까?

필자는 그것이 현 정권 집권 이래 전개돼 온 국가 정체성 정치에 새로이 불을 지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같은 국가 정체성 정치는 각 정파에 타격을 줄 뿐이라고 예측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앞날에 커다란 폐해를 끼칠 것을 우려한다. 국론 분열의 차원이 아니라 더 큰 차원에서다.

2002년 대선을 계기로 등장한 새로운 정치세력은 과거를 들추고 부정함으로써 자기들의 존재를 내세우고자 한다. 과거를 들추는 과정에 분단과 전쟁이, 그리고 북한의 존재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것들의 의미를 둘러싼 정치적 대결이 대한민국의 본령에 관한 국가 정체성 정치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 정체성 정치는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심의 이반을 초래하고 국가 발전에도 폐해를 끼칠 것이다. 왜 그런가?

국가 정체성과 표리(表裏) 관계를 이루는 것이 국민 정체성이다. 국민 정체성이란 나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 하는 국민 개개인의 심리적 정향이다. 국민 정체성이 높은 국민은 나랏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챙기며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국민 정체성이 높은 나라는 안으로 건실하고 밖으로 활력이 있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국민 정체성은 매우 높다(중앙일보 10월 13일자). 단일민족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데다 민주화 이후 크게 고양된 국가에 대한 주인의식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장래에 대해 낙관하는 한 가지 이유다. 그런 국민이 사랑하며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나라의 모습이 바로 국가 정체성이다.

국민이 마음속에 그리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무엇일까? 개인의 잘나고 못남은 상대적이다. 즉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규정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남에게 내세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모습이 곧 국민이 보고자 하는 나라의 모습이다. 그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 즉 세계적 표준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국가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엇인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에서 주장해서가 아니라 오늘날 잘난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지향하고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가장 거리가 먼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국민에게 북한은 부끄러움의 대상이지 결코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북한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의하려는 진보 정파의 시도는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 그처럼 시대착오적인 정치공세에 말려들어간 보수 정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벌써부터 대선 정국이 달아오르고 있다. 제3의 정치세력이 미래지향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국가비전과 구체적 로드맵을 가지고 등장하면 과거에 집착하는 기성세력은 몰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혹은 이전투구를 벌이는 기성세력 중 어느 누가 먼저 과거를, 뒤를 향한 얼굴을 앞으로 돌려 미래를 보고 나아간다면 그 세력이 승자가 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지금과 같은 정치판이 계속된다면 국민은 그 모습과 자신의 일체성을 부인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추구할 것이다. 국민 정체성이 약화되고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만 높아질 것이다. 약화된 국민 정체성에 따라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는 국민이 늘어날 것이다.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치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