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종친회 "못 옮긴다"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정부가 전주시 경기전에 보관 중이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초상화.보물 제931호.사진)을 서울 국립 고궁박물관으로 옮기려 하자 전주시와 이씨 종친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14일 전주시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그동안 전주시 경기전에 보관해 온 태조 어진을 국가에서 관리하겠다는 의견을 통보해 왔다. 이와 관련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1일 국감에서 "태조 어진 관리 주체를 국가로 전환해 국립박물관에 영구보존 하고 경기전에는 모사품을 보관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태조 어진 일부가 훼손돼 조사한 결과 2000년 3월 이씨 종친들이 경기전에서 분향례를 올리던 중 실수로 창호문이 넘어지면서 오른쪽 윗부분이 손상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안전하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국가가 보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 방침이 전해지자 전주시와 이씨 종친, 시민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최명규 전주시 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기획단장은 "어진 없는 경기전은 의미가 없다"며 "전주 이씨 종친들과 문화계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시의 입장을 문화재청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전주시 문화유산 심의위원 10여 명도 "어진은 경기전에 봉안돼야 한다"는 뜻을 문화재청에 보내기로 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태연 전북도 지원장은 "어진을 전주 외 타 지역에 보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기전에 어진전을 지으면 훼손 방지 등 관리를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 홍영표(44.전주시 서신동)씨는 "태조 어진은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으로, 전주 시민들의 의견수렴 없는 이전 결정은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태조 어진은 1410년 제작돼 전주.경주 등 전국 6곳에 보관해 왔으나, 대부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전주 경기전 것만 온전하게 보존돼 왔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변색되고 낡아 1872년 다시 그린 뒤 경기전에 보관해 왔으나 최근 국정감사에서 훼손은폐 문제가 제기됐다.

전주=장대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