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왜요? 어째서요? 아이들은 모두 작은 철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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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린이 책에 철학 바람이 분다. 철학(philosophy)이란 말이 원래 그리스어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에서 유래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선 어쩐지 '논술'과 짝을 이루는 듯하다. 서울대가 2008년부터 통합형 논술을 시행한다고 하면서부터 너도나도 철학책을 '논술 대비에 딱 맞는 책'이라며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씁쓸한 현실이긴 하지만 어린이 책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엄마, 철학이 뭐예요?' '아빠, 철학이 뭐예요?'(배은율 지음, 해피아워, 각 184쪽, 각 8500원)는 각각 서양과 동양을 대표하는 철학자를 13명씩 뽑아내 그 사상과 업적 등을 엮어놓은 책이다. 각 철학자들이 남긴 에피소드를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2년 전 공연 감상법을 담은 어린이 책 '공연이랑 놀자'(중앙M&B)를 펴냈던 저자는 이번에도 지루할 법한 소재를 쉽게 푸는 재주를 보여줬다.

현재 5권까지 나온 '생각하는 학교' (오스카 브르니피에 글, 파스칼 르메트르 등 그림, 박창호 옮김, 녹색지팡이, 각 112쪽, 각 9000원.사진)시리즈는 각각 '난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내가 누구인지 나도 궁금해''삶이란 무엇일까''선과 악이란 무엇일까''감정이란 무엇일까' 등을 책 제목으로 삼아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먼저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는지 어떻게 아니?'라고 묻는다. 아이들의 가상답변 '엄마 아빠가 뽀뽀해주니까요'에 또 질문이 꼬리를 문다. '뽀뽀하면 다 사랑하는 거니?''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뽀뽀를 하니?''사람들이 아무 때나 너한테 뽀뽀해도 좋겠니?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도….'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과정을 "즐거운 생각놀이"라며 "아이들이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이 깊어지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철학 그림책을 표방한 전집도 출간됐다. 출판사 바라미디어는 만 4~10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작은 철학자'시리즈 1차분 54권(정가 58만원)을 펴냈다. 동서양의 신화.우화.민담 등에서 철학적 주제를 뽑아 동화로 재구성했다. '종교의 계율''절망의 극복''군중심리의 문제점' 등 무거운 토론 거리도 들어있다. 현재 전집으로만 묶여있지만 이르면 연말께 단행본으로 나올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철학책에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재미를 찾으려면 철학적 화두와 일상생활을 연결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김보일 배문고 국어교사는 "추상적인 사상을 쉽게 설명해주는 수준의 철학책은 지식 모음집에 지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사물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생각해보는 사례가 풍부한 책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에 제시된 여러 주제를 가정.학교 등의 문제에 빗대어 생각해보는 것도 어린이 철학책의 둘도 없는 활용법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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