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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권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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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49년 4월 당시 최대교 서울지검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임영신 상공부 장관의 비리를 포착했다. 임씨가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공금을 횡령하고, 대통령의 생일기념품을 마련한다며 업체에서 거액을 거둬들인 혐의였다. 당연히 기소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을 통해 불기소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법무부 장관은 "장관 등에 대한 범죄를 기소할 때는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최 지검장은 "기소.불기소 결정은 검사의 권한이며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하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어 임씨를 불러 직접 조사한 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해 버렸다. 이는 검찰 간부가 법무부 장관의 부당한 지휘권 행사에 맞선 첫 사례로 기록됐다.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 논란은 반세기가 지나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2년 7월 다시 불거졌다. 당시 대통령의 3남 홍걸씨에 이어 차남 홍업씨마저 비리 혐의에 연루돼 구속될 처지에 놓였다. 청와대는 고민에 빠졌다. 두 아들 중 한 명은 불구속 수사를 받아야 한다며 '작전'에 돌입, 묘수를 찾아냈다. 49년 말 법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행사된 적이 없는 검찰청법 제8조였다.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지휘권 발동 조항이었다. 청와대는 송정호 법무부 장관에게 이명재 검찰총장을 상대로 지휘권을 발동하도록 종용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작전은 검찰의 반발을 우려한 송 장관의 반대에 부딪혀 무위로 끝났다. 송 장관은 곧바로 경질됐다.

본래 지휘권 발동은 검찰이 본연의 직무에 소홀하거나 검찰권을 정치적으로 남용하는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지휘권 파동'이 날 소지가 아예 없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정권의 심기를 미리 감지해 특정 사건을 원만하게 협의하면 그만이었다.

요즘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검찰이 술렁이고 있다. 수많은 사건 중 '강정구 교수 사건'을 찍어 그의 친북 논리를 옹호하려는 지휘권 행사에 검찰은 불만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념 갈등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