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품 시장 '큰손'은 중국 인민해방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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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6월 영국이 중국에 반환한 청동 종. 영국 해군이 1900년 중국을 침입하는 과정에서 현지 농민들에 희생된 동료를 추모하는 뜻에서 빼앗아왔던 문화재다. 중국은 인민해방군까지 나서 외국으로 흘러나간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BBC]

세계 미술품 시장을 주무르는 큰 손은? 엉뚱하게도 중국 인민해방군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4일 인민해방군이 저돌적으로 예술품을 사들이는 바람에 가격이 크게 뛰어오르는 등 예술품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앞으로 세계의 미술품 수집가들은 중국 군의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민해방군은 올해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중국 왕실에서 쓰던 청동 항아리를 8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인민해방군의 예술품 구매업무 등을 담당하는 회사 '폴리 문화예술'의 창고에는 1억 달러어치의 예술품이 보관돼 있다. 벨기에 출신으로 세계 최대의 중국 예술품 거래상인 지젤 크로에(여)는 "이는 중국 정부가 10년간 사들이는 예술품 규모"라고 밝혔다.

폴리 문화예술이라는 자회사까지 두고 있지만 예술품 구매 지휘는 군 정보업무를 하는 인민해방군 연합사령부 내 최고 정예부대인 소속 장교들이 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의 예술품 구매에 대해 폴리 문화예술 측은 "과거 서양에 강탈당했던 중국의 보물을 되찾아오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해방군의 우선 구매품목은 중국의 고대 미술품이다. 그들의 구매 계획 목록에는 서양의 은행가 등이 보유해온 1500만 달러짜리 용 모양 청동제품 등 중국 왕조의 제품들이 많다.

IHT는 "중국 군이 경매 전에 비싼 값에 사들이거나 경매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는 경우가 많아 예술품 가격이 너무 오르고, 경매시장 질서가 흔들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크로에는 "지금까지 2000점 이상의 중국 예술품을 인민해방군 등에게 판매했다"며 "10년 전 80만 달러였던 중국의 청동 제품이 지금은 300만 달러를 넘는다"고 말했다. 가격 급등에 따라 세계의 중국 예술품 시장 규모는 10억 달러로 커졌다.

인민해방군은 예술품 구매 자금을 대포.탱크 등 무기수출 대금으로 충당해 왔다. 인민해방군이 무기판매를 위해 북미지역에 세운 PTK인터내셔널은 1987 ~ 94년 2억 달러 규모의 반자동 경화기를 판 것으로 알려졌다.

인민해방군은 최근 들어 예술품 구매 전략을 확대했다. 앞으로 5년 동안 정부 돈을 써서라도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 사장 등 명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동서양 예술품을 사들인다는 방침이다. 이는 중국 정부 측과도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박람회 등 대형 국제행사를 치를 예정인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1000개의 미술관을 열 계획이지만 작품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인민해방군의 예술품 구매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크로에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선 최상의 청동 상을 갖는 것은 절대 권력을 상징해 왔다"며 "중국 군은 예술품 보유를 통해 그들의 힘을 국내외에 과시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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