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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초과 계열사 지분 소급 매각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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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현행 금산법은 대기업집단 금융기관이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승인없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전체 지분의 20%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특히 동일 계열회사의 경우는 5%로 제한하고 있다.

대기업이 소유 금융기관을 이용해 예금자들의 돈으로 다른 기업을 사들이는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법정 한도를 초과한 지분에 대한 강제 처분 규정이 약해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와 열린우리당은 각종 제재를 보다 강화한 금산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했고, 이번에 재경위 심의에서 단일안이 마련될 예정이다. 두 가지 개정안의 가장 큰 차이는 법정 한도를 초과하는 금융기관 지분 처분을 소급 적용하느냐에 있다.

정부안은 금융감독 당국이 법정 한도 초과 지분을 일정 기간 내에 강제 매각하도록 하며, 지분 초과 여부를 따지는 시점은 법 시행일 이후로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여당 안은 초과 지분 취득 시점이 개정법 시행 이전이라 할지라도 소급해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편법 기업 확장을 막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개정안, 그중에서도 특히 여당이 발의한 안의 경우 헌법을 위배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헌법은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침해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여당 발의안이 국회를 통과한다 할지라도 언제라도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헌법소원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심지어 재경위 심의에 앞서 개정안을 검토 중인 전문위원들까지도 법안의 위헌 소지를 우려하고 있을 정도다.

재경위 전문위가 작성한 법안 검토 보고서는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 보유 주식을 처분하는 것 외에는 위법상태를 해소할 방법이 없으므로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권 침해 금지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동일 계열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비금융회사의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법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결권 제한보다 재산권 침해 정도가 훨씬 강한 처분명령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밝히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설령 소급입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행위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강제 처분명령을 사후에 신설하는 것은 재산권에 대한 신뢰 보호 원칙에도 반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선 동법은 경제 논리에도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금산법의 목적은 법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금융기관의 합병.전환 또는 정리 등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을 지원해 금융기관 간의 건전한 경쟁을 촉진하고 금융업무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금융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의 제5장에는 법의 목적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법의 구조적 결함까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을 이용한 기업결합의 제한'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 대목은 금산법의 기본 취지인 금융산업의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공정거래법에 가까운 기업 집중에 대한 규제 항목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공정거래법에는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 집중 억제'에 관한 각종 제한이 담겨 있다. 그중 하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로서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는 취득 또는 소유하고 있는 국내 계열회사 주식에 대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그렇다면 금산법으로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처분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이중규제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금산법의 적용 범위도 경제원리와는 거리가 있다.

법은 금산 분리의 적용 대상 금융기관에 '은행.증권회사.보험사업자.상호저축은행.신탁회사.종금사.금융지주회사'는 물론이고 '여신전문금융회사.선물업자.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까지 포함시켰다.

세계 어느 나라 법제를 살펴봐도 우리나라처럼 제2금융권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을 금산 분리 원칙의 적용 대상으로 삼는 곳은 없다. 더구나 여신전문회사의 경우 금융기관의 기본 업무 중 하나인 수신기능조차 없는 곳들로 엄밀한 의미에서 금융기관으로 볼 수도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카드 등 카드사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들에 대한 자금 공급자는 거의 대부분이 기관투자가들이다.

금산법은 금융 능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특정 다수의 예금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데 금융거래 능력이 탁월한 시장의 큰손들(기관투자가)까지 보호하기 위해 여신전문회사를 금산 분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논란을 낳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여신전문회사를 금산법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금산법 개정안과 직접 관련되는 회사 가운데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 주식 보유(7.2%)를 허용하되 5% 초과분의 의결권은 제한하고,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25.6%)은 일정 기간 유예 후 초과분을 매각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삼성전자 지분은 금산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취득한 것이라 문제가 없지만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은 금산법 제정 이후 금감위 승인없이 취득했기 때문에 국민 정서를 감안할 경우 매각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타협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법보다 정서가 앞서는 일이 반복되면 재산권 보장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다.

시장경제의 초석은 계약 이행과 재산권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시장은 혼란과 불확실성에 빠지고 경제효율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법과 상식에 입각한 문제 처리야말로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촉진하는 성숙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홍기택 (중앙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