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UP] 82세 거장 산소호흡기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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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산소호흡기를 달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사람이 있다. 1960년대 일본 액션 영화를 주도했던 '폭력 미학의 거장'스즈키 세이준(鈴木淸順.사진) 감독이다. 올해 82세인 그는 코로 연결된 호스와 바퀴가 달린 산소통을 직접 끌고 부산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갔다. 주최 측은 한 시간으로 잡혔던 11일 기자 간담회 시간을 30분으로 확 줄였다. 그의 건강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나 간담회장은 오히려 감독의 투혼이 돋보였다. "촬영장에서도 산소호흡기를 달았다는데" 등의 질문에 그는 재치와 유머, 투지를 버무린 답변을 기침과 함께 이어갔다. "영화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혜는 하나도 필요 없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체력이다." 순간 간담회장에는 짧은 웃음 뒤에 긴 숙연함이 깔렸다. 이번에 초청된 그의 신작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 담긴 '노장의 투혼'이 가슴을 때렸기 때문이다.

부산=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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