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초긴축」의 재포석|「볼커」미연방준비이사회의장 재임명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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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경제의 돈줄이 향후 4년 동안 또다시 고집장이「폴·볼커」(55)에게 맡겨졌다. 중앙은행총재에 해당하는 미연방준비이사희(FRB)의장에 재임명된 「볼커」는 그 동안 『미국경제의 근본적인 고질은 인플레에 있고, 그 인플레를 잡는 길은 오로지 강력한 금융긴축밖에 없다』는 소신아래 줄기차게 돈줄을 죄어온 장본인이다.
종래에는 금리에만 의존해오던 긴축정책을 그는 유례없는「고금리」와 강력한 「통화긴축」이라는 쌍칼을 양손에 쥐고 인플레의 싹을 무차별적으로 쳐내온 것이다.
그 덕분에 한때 13%까지 치솟았던 물가는 최근 4%수준까지 억제되었고 실추되었던 달러화의 위신도 왕년의 명예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비난의 표적을 면치 못했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고금리·초긴축」정책은 급기야 대공황 이후의 최대 실업을 몰고 왔다. 심지어는 「볼커 불황」이라는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에 대한 비난은 사실 미국 내 보다도 오히려 구미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더했다.
그 동안 경제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각국의 수뇌들은 미국의 고금리정책을 일제히 공격해왔고 특히 돈줄을 쥐고 있는「볼커」의장에 대한 인신공격까지도 서슴지 않았었다.
세계적인 유명경제전문지들이 한때는 『인간「볼커」는 누구인가, 도대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이길래 저처럼 고집불통인가』하는 특집을 대서특필할 정도였다.
어깼든 「볼커」의 재임명을 놓고 이것이 그의 정책적인 승리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오히려 정치적인 이유에서 대통령「레이건」이「볼커」의 재임명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레이거노믹스가 퇴색한 마당에 인플레 진정의 공로자로 평가받고 있는 「볼커」의장을 갈아치운다는 것은 그나마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레이건」경제정책의 멱을 스스로 졸라매는 자가당착이라는 해석이다.
사실 그 동안「볼커」의장이 「레이건」대통령이나 「리건」재무장관과도 적지 않게 층돌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었다.
원래 레이거노믹스 자체가 짬뽕(폴리시믹스)적인 경제정책이듯이 한쪽에서는 소위 공급 경제론자들로 불리던 「노르만·튜어」재무차관을 비롯해 균형예산을 부르짖던「스토크먼」 예산국장 등의 서술이 퍼런 가운데 당초「볼커」의 비중은 별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레이거노믹스의 다른 한 팔인 감세 정책이 실패로 판명되었고 여기에 앞장섰던 「노르만·튜어」등이 쫓겨나는 것을 계기로 상대적으로「볼커」의 지위와 영향력은 한층 강력해졌다. 비록 불황 속에도 급속히 치유되고 있는 인플레진정이 이를 뒷받침했다.
「레이건」으로서도 기왕에 벌어진 불황에 대한 문책보다는 인플레진정에 대한 포상이 정치적으로도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섰고 더우기 최근 들어 불황에 빠졌던 경기도 회복세를 보이자 「볼커」에 대한 신임을 더욱 높이 평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쨌든 고집장이「볼커」가 재임명됨에 따라 더욱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쪽은 미국 내 보다도 다른 나라들인 것 같다.
다소 늦춘 상태에 있는 긴축의 고삐를 그가 또 언제 생각이 달라져 잡아챌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내의 돈줄 뿐 아니라 세계의 돈줄을 좌우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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