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변 산서생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팽진은 37년 홍군(중공군)정치위원으로 일하면서 등소평·유소기 등과 만났으며 51년부터 문화혁명으로 실각된 66년까지 북경시장을 역임했다. 모택동에 의해 숙청된 유소기 계열인 팽은 문화혁명의 첫 희생자로 공개재판을 받는 등 수모를 겪으며 79년 13년간의 오랜 정치 공백 끝에 복권돼 전인대법안위원회 주임을 맡아 중공의 형법 및 경제법정비에 힘썼다.
모의 강경책에 반대하는 세력의 상징이었던 그는 81년6월 전인대상무위원장 섭검영의 건강악화에 따라 전인대부위원장직에 전념하기 위해 법안위원회주임에서 사임했으며 그 동안 의례적인 국가주석의 역할을 수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