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기능장 4관왕' 임 반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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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40대 중반부터 기능장 시험에 도전해 4개의 기능장 자격을 잇따라 따낸 현장 엔지니어가 있다. 현대중공업 보전부 임영수(51)반장이다.

임 반장은 5일 위험물 관리 기능장 국가기술자격검정시험에 합격해 가스(2000년). 보일러와 배관 기능장(2002년)에 이어 4관왕에 올랐다. 기능장은 기능직이 딸 수 있는 기술분야 최고봉의 하나다. 실무경력이 11년 넘어야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진다. 임 반장이 기능장 시험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1998년. 44세 나이 때 남보다 늦게 출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보일러 파트에서 묵묵히 근무하던중 현장 기능직에 전문대를 졸업한 후배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학교를 2년 더 다녀서인지 뭐가 나아도 낫더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장라인에서의 실기는 자신 있었지만 필기시험이 문제였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2시간씩 공부했다. 토.일요일은 하루 10시간씩 평일에 공부한 것을 다시 들여다 봤다. 600페이지 짜리 책 한권을 한달만에 뗐다. 2년여의 노력끝에 임 반장은 2000년 가스 기능장에 올랐다. 한번 시작하자 욕심이 났다. 내친 김에 가스설비 연관 분야인 ▶보일러와 배관▶위험물 관리 기능장도 따기로 마음 먹었다.

공부를 하느라고 현업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후배 9명을 이끌어야 하는 현장 반장의 직무를 다하기 위해 저녁엔 책을 잡지 않았다. 후배들과 퇴근 후에 술잔을 기울이며 단합에 힘썼다. 8월말 위험물 관리 기능장 시험을 앞두고는 여름 휴가도 못갔다. 일주일간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

임 반장은 "젊은 사람들보다 이해력은 빠르지만 암기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며 "주말에도 공부만 하는 남편을 이해해 준 부인이 고맙다"고 했다. 기능장 출신들이 모여 시험 정보를 나누는 현대중공업 기능장회도 수험생활에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젠 쉴 법도 하지만 임 반장은 새 목표를 세웠다. 내년 하반기 가스 기술사 시험에 도전키로 했다.

기술사는 엔지니어들에게 작위로 불린다. 기능장과는 달리 주로 대졸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보는 시험이다. 가스 기술사 부문에선 고졸 출신이 아직 한명도 없다. 그는 공학학사를 따기 위해 울산과학대에 최근 등록했다. 월~목요일 퇴근후 6시부터 밤 10시반까지 대학 교양과목 수업을 듣는다. 임 반장은 "다행히 기능장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가 있어 내년 여름이면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세상에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젠 전문대를 나온 후배들을 봐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임 반장은 현대중공업 기능장회 부회장을 맡아 독거노인들의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지역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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