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21년 만에 한국 무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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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이 수석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함께 필하모니 홀 로비에 모였다. 베를린필은 수석 지휘자와 신입 단원 선발을 단원들의 투표로 결정한다. 신입 단원을 결정하는 투표에서 지휘자는 다른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한 표만 던질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자리를 놓고 빈 필하모닉과 겨루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PO).

BPO가 21년 만에 서울 무대에 선다. 1984년 10월 세종문화회관 공연 때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제6번,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을 연주했었다. 그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단원의 절반가량이 정년 퇴임했다. 첼로 수석 게오르크 파우스트(49)는 서울 공연 이듬해에 BPO에 합류했다. 평균 연령도 38세로 훨씬 젊어졌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수석 지휘자로 거쳐갔고 지금은 영국 출신의 사이먼 래틀(50)이 사령탑을 맡고 있다.

하지만 BPO의 음악적 자존심은 예나 지금이나 높다. 웬만해서는 외국 순회공연 때 협연자를 두지 않는다. BPO의 자부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BPO는 1882년 창단 때부터 단원들이 지휘자를 투표로 뽑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수석 지휘자가 되려면 단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신입 단원은 동료 단원들 앞에서 오디션을 치른다. 1~2년의 수습 기간을 거친 다음 같은 파트의 동료 단원의 추천을 받아 단원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정단원이 될 수 있다.

독일의 교향악단은 대부분이 국립 단체다. 음악가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근무 시간과 처우 조건을 놓고 매년 협상을 벌인다. 이에 반해 BPO는 독립 법인이어서 예정된 연습시간을 넘겨도 별도의 수당을 주지 않는다. 수석 주자가 받는 보수는 평단원보다 25% 많을 뿐이다. 성과급 위주의 개별 연봉 협상으로 위화감을 조성하지도 않는다. BPO는 단원 총회에서 선출한 임기 3년의 이사(단원 대표) 2명이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다. 이사진의 고문 역할을 하는 5인 위원회는 연주 여행과 오디션 계획을 수립하고 단원들의 근무 상황을 점검한다.

파트별 수석 주자가 2명씩이고, 악장(樂長)도 4명이나 된다. 단원 130명 가운데 여성은 17명(13%). 외국인이 20%이다. 77년 악장으로 합류한 야스나가 토루(54)가 대표적이다. 정년 65세를 넘긴 은퇴 단원들에게는 10년간 연금과 무료 티켓은 물론 음반 녹음에 따른 저작권료를 준다.

단원 모두가 독주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플루트 수석 에마누엘 파후드(35)는 독주자로 더 유명하다.'베를린필 12 첼리스트'등 3~15명 규모의 실내악단이 31개나 된다. 단원들이 지휘자도 동료 단원도 직접 선발하지만 연주 결과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진다. 지휘자가 바뀌더라도 한결같은 연주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연메모=11월 7일 라벨'어미 거위 모음곡', 베를리오즈'해적 서곡', 베토벤'교향곡 제3번', 8일 하이든'교향곡 제86번', 토마스 아데'피난처들', R 슈트라우스'영웅의 생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6303-193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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