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똑 부러진' 해법없어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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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태평로에 있는 삼성 본관의 요즘 분위기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연일 쏟아지는 정치권과 여론의 집중타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나와 삼성을 압박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해법을 찾기 힘든 문제들이다. 삼성 관계자는 "연일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마땅히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삼성을 둘러싼 현안은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삼성차 손실 보전 문제▶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발행▶X파일 논란▶공정거래법상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규정 등이다. 정치권 등에서는 이런 현안을 풀기 위해 삼성이 '성의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으로서는 그렇게 쉽게 풀 성질의 문제들이 아니다. 법적.제도적으로 걸리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그룹의 지배구조와 직결되는 문제도 있어서다.

금산법의 경우 여권에서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7.2%는 인정하되 삼성카드가 금산법 제정 이후 취득한 에버랜드 지분 25.6% 가운데 5% 초과분은 처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나 삼성은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초과 지분을 인수할 곳도 마땅치 않지만, 무엇보다도 미상장사인 에버랜드의 주식 평가가 난제다. 평가 과정에서 또 다른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차 손실 보전도 골치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삼성 계열사끼리 분담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이건희 회장 개인과 채권단 간의 약속 이행에 계열사 자금이 동원될 경우 계열사 주주들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삼성생명을 상장해 이 회장이 채권단에 맡긴 삼성생명 400만 주를 현금화하면 문제가 풀릴 수도 있으나, 생명보험 상장은 기존 주주와 보험계약자 간의 이익 배분 문제 때문에 현재로선 당장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 여기에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과 X파일 문제는 사법 문제로 비화해 삼성으로서는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기 곤란한 상황이 돼버렸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규정에 대해 삼성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취하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삼성은 "재산권 및 평등권 침해에 대해 법리적 판단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정치권과 여론의 공세를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기 때문이다. 삼성 일각에서는 "정부나 여권이 너무 감정적이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옴짝달싹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들린다.

삼성은 현재 사회공헌을 대폭 늘리고 그룹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등 '선택 가능한 모든 대책'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어떤 대책을 내놓더라도 여론의 역풍이 우려된다"며 "일단 시간을 가지고 가닥을 잡아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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