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고교생의 명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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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교주변의 폭력배 근절을 위해 불량·폭력서클 및 범법학생의 명단제출을 요구하는 경찰의 입장과 이를 비교육적인 처사라 하여 반발하는 학교측의 입장은 각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는 오래된다. 범죄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범행 수법은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다. 동기래야 용돈 마련이 고작이다.
이런 단순한 동기로 주먹이나 흉기를 휘둘러 인명을 해치는 일을 많은 청소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
79년까지 연평균 4%씩 증가하던 청소년범죄는 80년 들어 무려 10.2%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중·고학생들의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높다.
어제 신문사회면만을 보아도 충청도 어느 도시에서 『후배를 교육시킨다』고 뭇매를 때려 한 학생이 숨진 사고가 났는가 하면,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학생 가운데 4분의1에 해당하는 4백60명이 지난 3, 4월 2개월 동안 학교주변에서 금품을 갈취 당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배움의 터전인 학교나 그 주변마저 각종 범죄 및 비행의 온상이 되고있다는 사실은 어떤 측면에서건 여간 우려되는 현상이 아니다.
경찰이 학교당국에 대해 불량학생들의 명단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뜻에서 일단 수긍은 할 수 있다.
이런 요구를 하면서 경찰은 신고된 학생에 대해 절대보안을 유지하고 신병을 보호한다고 약속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제자를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를 거부하고 있다.
청소년범죄는 한시대의 사회적 병리현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다. 경찰이 떠맡는다고 해서 효과적인 해결책이 나오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말은 신고된 학생의 보안을 유지해준다고 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그 점에 대한 확신이 가지 않는다. 그동안 경찰은 기회 있을 때마다 체질을 바꾼다고 하지만 경찰의 피의자를 다루는 태도가 썩 나아졌다고 볼 사람은 아직 없다.
학교당국이 사제간의 신뢰 같은 교육적인 이유 말고 명단제출을 거부하는데는 강력한 제재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불량학생이라고 했지만 그 한계도 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성인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바와 같이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엔 불량학생들과도 어울려 보고싶은 충동을 갖는 게 정상이다. 문제학생들과 사귄다는 것은 길게 보면 한사람의 인격형성에 오히려 도움을 주고 삶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단순히 불량서클과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 명단에 올랐다고 할 때 그것은 한사람의 진노를 왜곡시킬 뿐 아니라 한 가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될 가능성조차 있다.
청소년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는 분명히 우려되는 현상이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할 줄 믿는다. 처방을 내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원인분석이 있어야한다. 산업화의 길목에서 겪는 어쩔 수 없는 진통이라고만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학생의 비행이 늘어나는 원인의 하나는 현행 교육제도에도 있다. 평준화시책으로 가정환경이나 학력에 차이가 큰 학생들을 한군데 모아 교육을 시키는데서 오는 부작용이라는 뜻이다. 어느 학교 건 불량학생·문제학생으로 지목되는 학생이 약 20%쯤에 이른다는 숫자는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학교 건 선전불능의 문제학생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엔 어느 학교 건 일률적으로 이처럼 많은 불량학생은 없었다. 문제학교는 있었지만 모든 학교가 다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평준화시책에 의한 불량학생의 확산은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점을 당국은 인정해야한다.
경찰의 수사력이 동원된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명단제출을 둘러싼 승강이는 미묘한 것이다. 현 단계에서는 문제는 우선학교에 맡기고 끝까지 선도가 어려운 경우 차라리 퇴학을 시키는 게 최선의 방책일지도 모른다.
명단의 통보는 교육적인 원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명단을 통보, 의법 처리하는 방법은 최악의 경우에 써야할 마지막 카드여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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