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와 남산소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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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경하는 사람들은 으례 남산을 보고서야 서울에 들어섰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런 남산을 가로막으며 거만스럽게 버티고 선 고층짜리 아파트와 호텔 등을 보고 가슴이 콱 막히는 것을 느낀다.
『아아, 어쩌다 저 좋은 산을 저렇게…』 모두들 혀를 차며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실지회복을 겨냥한 서울시의 이번 남산정비계획이모든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산세가 가로막힘 없이 싱싱한 푸르름으로 메마르고 목마른 도시를 적셔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목멱산이었다. 고려 때부터 기록에 등장한 이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구할멱자로 미루어 나무가 무척이나 많았던 것 같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애국가의 가사에도 소나무로 철갑을 두른 것 같다고 했을 것이다.
나무뿐만 아니다. 산세도 수려하고 지세도 다양하다.
해발2백74m에 불과한데도 절벽도 있고(북쪽) 완만한 경사(서쪽과 남쪽)도 있다.
중부 이북에 분포된 수종은 거의 있고(1백93종)서식하는 동물도 꿩·박새·찌르레기 등 27종이나 된다.
외국인들이 특히 부러워하는 것은 이산의 위치. 구름도시의 한복판에 알맞은 높이로 자리잡은 숲 덩어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콘크리트 사막 가운데 자리한 오아시스에 비유했다.
또 남산은 바로 서울의 상징이요, 한국의 상징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런 남산이 잠식당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때부터였다.
산기슭을 깎아 신사와·통감부를 세우고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남산을 공원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훼손은 해방 후부터였다.
야금야금 건축물들이 등고선을 따라 올라갔고 끝내는 거대한 괴물건물들이 들어서서 산을 가로막기에 이르렀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남산의 잠식정도가 바로 정권의 부패정도와 비례했다고 까지 말했다.
남산의 실지회복은 빠를 수록 좋다. 무엇보다도 건물의 철거와 보상문제 등을 따질 때 경제작이기 때문이다. <오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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