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이창호를 흠모했던 조선족 소년 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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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예선결승 하이라이트>
白. 박문요 4단(중국) 黑. 김형환 2단(한국)

박문요(朴文堯). 올해 17세, 지린(吉林)성 출신의 조선족 소년 고수.

1988년생이니까 서울올림픽 때 태어났고 자라서 바둑을 배우며 이창호 9단의 책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며 보고 또 봤다. 조선족이기에 이창호라는 존재가 더 크고 멋있게 와닿았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박문요의 바둑은 최근 유행인 격렬한 흐름과는 영 다른 느릿하고 여유만만한 흐름을 보여준다.

박문요는 P조 8강전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왕레이(王磊) 8단을 격침시켰다. 그의 상대는 신예 유망주 김형환 2단.

장면1=박문요의 느긋한 수법을 감상해 보자. 39로 육박했을 때 프로라면 누구나 A의 붙임수 한방을 떠올리게 된다. 귀를 지키며 흑을 중복으로 만드는 수. 그러나 박문요는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 기사처럼 40으로 지키고 있다.

햐! 하고 모두 놀란다. 그런 좁은 곳을 지키나. 지켜야 하나. 하지만 막상 B로 들어오면 괴로운 건 사실이다. 그 바람에 41의 양 협공을 당했다. 흑의 김형환 2단이 51까지 손바람을 내고 있다. 다음 백의 최선은 무엇일까.

장면2='참고도'처럼 끊어 잡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이건 하책이다. 흑이 두텁고 귀의 실리도 아직 불안정하다.

박문요는 52로 그냥 막았는데 이 평범한 한 수가 감탄을 자아냈다. 백40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던 기사들도 이 수는 '좋은 수'라고 했다. 54까지 백은 중앙의 맛을 남긴 채 귀의 실리를 지켰다. 그리고 기회가 오자 58로 움직여 나갔다. 바둑이란 이렇게 두어도 한판이다. 그 느릿한 흐름이 소년 시절의 이창호를 많이 닮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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