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개공 땅 관련 24개 기업의 경우|팔았던 땅 16%나 재매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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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시책에 따라 팔았던 땅을 교묘히 다시 사들인 기업명단과 그 내용이 밝혀졌다. 3백84만평에 65억 원 어치-.
지난번 물의를 빚었던 한일합섬 등 4개 기업말고도 21개 기업이 토개공에 팔았던 땅을 재매입한 것으로 신고결과 밝혀진 것이다. 이미 문제가 되었던 효성은 이번 자진신고에도 걸렸다.
따라서 토지 재매입 사건에 관련된 기업은 모두 24개 사에 이른다.
저마다의 그럴만한 사연이 있겠으나 『어쨌든 정부시책을 어기고 기업윤리를 저버린 떳떳치 못한 일』 (김종호 건설부 장관) 임에는 틀림없다.
정부시책이라 함은 기업의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일체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토록 했던 80년의 「9·27 조치」를 뜻한다.
은행 빚은 잔뜩 짊어진 채 땅장사로 더 재미를 보던 경제 비리를 척결하고 땅을 팔아 은행 빚을 갚도록 하는 것이 근본 취지였다. 소위 부동산 처분을 통한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땅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원매자가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끌어왔고 이에 대해 정부는 토지개발공사로 하여금 채권발행을 통해 사들여버렸었다.
불응기업에 대해서는 주거래 은행을 통해 대출 중단의 본때를 보이는 등 강권을 발동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토개공이 사들인 땅은 2천3백81ks평의 실적을 올렸었다.
그러나 이중 2개 기업들이 토개공으로부터 다시 사들인 땅이 모두 3백91만 평에 달하니까 매각한 땅의 16.4%를 재매입한 셈이다.
물론 이번 자진신고 기간에 밝혀진 당사자 중에는 문제삼을 만하지 않거나 선의의 피해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정부도 정밀조사를 통해 옥석을 가려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원칙은 모두 토개공에 되팔도록 하고 그 대금도 기업들 손을 거치지 않고 토개공이 직접 기업의 은행 빚을 갚도록 해버렸다. 말하자면 괘씸죄의 차원에서 강력하게 조치하겠다는 것이고 그밖에도 대출중단이나 자금출처 등 다른 강경한 조치들도 잔뜩 유보해 놓고 있다.
사실 단순히 돈의 액수로 따져 본다면야 이번 조치로 이름 있는 대기업들이 당하는 망신은 사회적으로 매우 가혹한 처벌에 해당된다.
정부측의 기본입장도 재매입한 땅이 몇 평이냐, 금액이 얼마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윤리적」인 차원에서 일부 기업들이 또 다시 정부시책을 기만했다는 점에서 단호하게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토지 재매입을 둘러싼 최근 일련의 조치들은 우연찮게도 한일합섬을 대상으로한 비밀수사 과정이 문제가 되면서 급속히 번져 나갔다.
당시 감사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 작업은 애당초 뿌리깊은 대기업들의 횡포나 금유 부조리를 발본색원하라는 고위층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자율화의 대세에 따라 시중은행까지 대기업들에 넘어가는 마당에 다시 한 번 기업풍토를 정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발상에서였다.
정부는 최근 한 걸음 더 나아가 비업무용 부동산 뿐 아니라 업무용 부동산에 대해서 그 소유조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나서는 등 가일층 강력한 자세로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기업부동산 처분에 대해선 강경책을 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우연찮게 빚어진 한 사람의 죽음과 최근 급진전되고 있는 기업 부동산 문제를 연관지어보면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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