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촌화학, 환경호르몬 걱정 없는 컵라면 용기 세계 첫 상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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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호르몬에 대한 염려가 없는 컵라면 그릇을 국내 기업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농심 계열의 식품 포장재 업체인 율촌화학은 3일 "옥수수 녹말을 주원료로 한 컵라면 용기를 개발해 6일 1차로 30만 개를 농심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율촌화학이 상용화한 컵라면 용기는 자연 원료를 사용해 환경호르몬이 나올 우려가 없다. 또 흙 속에 묻으면 자연 분해된다. 반면 현재 많이 쓰이는 스티로폼 용기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받는 물질(스티렌 다이머 등)을 배출할 뿐 아니라 분해도 되지 않는다. 환경호르몬은 인체에 해를 주며 물고기의 암수를 뒤바꿔 놓는 등 자연에도 치명적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율촌화학은 2000년 컵라면용 녹말 용기 개발에 들어가 올 8월 경기도 평택 포승공단에 한 해 5000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완공했다. 개발 과정에서 미국 등 해외 7건, 국내 6건 등 모두 13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 회사는 연말까지 매주 녹말 컵라면 용기 30만 개를 농심에 공급할 예정이다.

율촌화학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기술로 만든 녹말 용기는 뜨거운 물에 닿으면 밀가루 풀어지듯 해 컵라면용으로는 쓰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환경호르몬 문제를 의식한 선진국과 국내 업체들은 일부 컵라면에 종이 용기를 쓰고 있다. 녹말 용기의 개발을 주도한 율촌화학 김헌무 연구개발1팀장은 "종이 그릇을 만들려면 수십 년 자란 나무를 베어야 한다"며 "반면 녹말 용기는 한해살이인 옥수수에서 원료를 얻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 단가가 스티로폼보다 비싼 게 흠"이라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율촌화학은 신공정을 개발하는 대로 포승공단 내 컵라면 그릇 생산 시설을 대폭 증설할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컵라면 생산량은 약 9억 개며, 중국.일본.인도네시아.미국 등 전세계 생산량은 연간 100억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혁주 기자

"뻥튀기 공장서 비법 찾아내"
상용화 성공까지

"제조 비법을 찾느라 여러 곳을 헤맸습니다. 결국 뻥튀기 공장에서 비법을 알아냈습니다."

5년간의 노력 끝에 컵라면 녹말 그릇의 상용화에 성공한 율촌화학 김헌무(46) 연구개발1팀장의 말이다. 2000년 말 김 팀장을 비롯한 율촌화학 연구소의 연구개발1팀 6명은 컵라면 녹말 용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환경호르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썩지도 않는 스티로폼 용기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진은 컵라면 그릇이 가져야 할 특성부터 따져봤다. 5~6개월의 유통기한 동안 변형되지 않아야 하고, 뜨거운 물을 붓고 얼마 뒤에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내부의 열을 밖으로 잘 전하지 않아야 하는 것 등이었다.

"녹말 용기 속에 공기방울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녹말이 주성분이고 안에 기포를 함유한 물질. 그건 바로 뻥튀기였죠."

일단 뻥튀기 업체를 찾아 어느 정도의 온도와 압력에서 만들어 내는지를 알아봤다. 그러나 막상 실험실에서는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 팀장은 "뻥튀기가 아니라 웬 전병 과자 같은 것만 나오느냐고 다들 투덜댄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뻥튀기가 되지 않고 폭발하면서 실험실 안에 녹말 과자 파편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2003년 하반기가 돼서야 원하는 모양의 녹말 용기를 찍어낼 수 있었다. 다음은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찾아낼 차례였다. 일본의 기계 전문 업체와 대량 생산 시설 공동 개발에 들어갔다. 1년여 동안 한 달에 1주일씩 율촌화학 연구진 4명이 일본에 가 일본 연구진과 함께 일했다. 비밀을 유지하려고 일본 기계 공장 한쪽에 10평짜리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연구를 했다. 천막 안에는 옥수수 전분을 섭씨 200도로 가열하는 기계까지 있어 여름이면 천막 안 온도가 42도까지 올라가는 통에 비지땀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올 8월 드디어 녹말 용기에 담긴 컵라면 시제품이 나왔다.

권혁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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