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과 경제 단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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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공휴일에 관한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거의 해마다 구정을 공휴일로 정하자는 논란은 타성이 되다시피 해왔고, 공휴일과 일요일 사이에 평일이 끼이면 이를 특별휴일로 해서 연휴를 만들자는 주장이 있었는가 하면 최근에는 주5일 근무제를 채택, 일부 선진국에서 행하고 있는 주말 2일 연휴제를 실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어느 정당이 국회에 내놓은 『공휴일 및 각종 기념일 재조정에 관한 건의안』도 과거에 수 차례 거론돼 왔던바 연휴제를 살리자는 취지에는 다를 것이 없다.
국민당이 제안한 건의안은 ▲법정공휴일이 일요일이나 다른 공휴일과 중복될 경우 그 다음날을 공휴일로 하는 공휴일 순연제와 ▲구정을 2일간의 법정공휴일로 새로 지정하는 대신 신정 공휴일 3일을 1일로 줄이고 ▲정부주관의 각종 기념일을 공휴일 또는 일요일과 겹치지 않도록 현행 날짜개념에서 요일 개념으로 바꾸도록 건의하고 있다. 국민의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당은 또 이 건의안과 함께 제출한 보충자료에서 연중 공휴일수가 일요일을 포함해서 미국은 1백16일, 영국 1백21일, 프랑스 1백14일, 서독 1백16일, 오스트리아 1백19일인데 비해 우리는 67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휴일을 우리 형편에 알맞게 합리적으로 조정해보자는 문제는 갑론도 있을 수 있고, 을론도 가능하다.
휴일에 관한 문제는 획일적인 어떤 정형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노는 날」이라는 관점에선 그 국민의 생활패턴이나 정신자세, 혹은 사회 기강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점을 잊어해서는 안 된다. 가령 어느 외국의 휴일은 며칠인데 우리는 그보다 많다, 적다 하는식의 논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휴일 수를 산술적으로 비교한다거나 『미국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그래야 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사안의 한 면만을 보고하는 말이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 우리의 6배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어떻게 미국식으로 「일하지 않는」경우만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흔히 복지만을 얘기하고 그 복지의 근간이 되는 경제 단계는 논의의 초점에서 제외하거나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마치 나무의 열매가 많고 적음만을 따지고, 그 나무의 뿌리와 환경은 논외로 치는 논리와 같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을 향해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뛰어가고 있는 도정에 있을 뿐 우리나라가 어느새 선진국이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진국형 휴일제틀 넘보며 휴일 수를 따질 형편이 아닌 것이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한창 일해야할 시기에 하루라도 더 놀 궁리만 하다보면 정작 마음놓고 놀고 즐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쉬엄쉬엄 놀아가며 일하자는 주장만큼 듣기 좋고 달콤한 말도 없다. 그런 말은 백 번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걸맞지 않다는데 있다. 우리의 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다면 우리도 좀 쉬자는 얘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 국민소득이 8천 달러가 넘는 일본도 휴일은 년80일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수준에 맞추어 알맞게 놀아도 늦진 않다. 더 놀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 일을 조정할 것이 아니라 일을 많이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소득이 오르면 자연히 많이 놀아야 할 단계가 오는 것이다.
서독이 전후의 폐허로부터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고 있을 때, 공장은 튼튼하고 그럴듯하게 지으면서도 부속 사무실은 허술한 가건물을 사용했다는 일화도 있다.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어 충분한 수익을 올린 다음에 사무실을 지어도 된다는 우선순위의 투철한 인식을 오늘날 우리의 휴일문제와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직도 근면·절약·저축을 최선의 미덕으로 삼아야 할 단계에 있으며 그래야만 치열해만 가는 국제경쟁을 물리치고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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