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2030, 담배에 이별을 고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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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처음 만났을 때/숨이 가빠와 난 숨을 쉴 수 없었다//(…)//이제 우리의 사랑, 우리의 인연/여기서 끝내면 안 될까’.

 최범영 시인의 ‘담배’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담배와의 이별을 택한 시인의 목소리가 애절하면서도 단호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담배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20~30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라버린 담뱃값 때문일 테지만 청춘들 사이에 금연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담배라는 녀석은 끈질겨서 이별을 통보받고도 우리를 다시 찾아오곤 합니다. 청춘리포트는 20명의 청춘이 금연을 결심하며 태운 마지막 담배 꽁초를 수거했습니다. 위 사진은 그들이 생애 마지막으로 태운(부디 마지막이기를!) 실제 담배 꽁초입니다. 금연하는 청춘이 아름답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내 생애 마지막 담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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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본다. 아마도 고교 시절이 끝나갈 무렵이었던 것 같다. 너를 입에 물면 어른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방과 후 후미진 골목길에 숨어 어른인 척 너를 물고 있던 친구들이 얼핏 기억난다. 그때는 왜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물론 청춘의 고민과 상처, 그 고비고비마다 너를 만나 위안을 얻을 때도 있었다. 연거푸 너를 피워대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특히 기자라는 직업을 얻은 뒤 너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마감에 쫓길 때 너를 입에 물면 안 써지던 기사도 술술 풀리곤 했다. 부장에게 깨졌을 때도 너의 연기를 삼키면 상처 받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취재원의 굳게 닫힌 입을 열 때도 너는 요긴한 녀석이었다. 너를 하나씩 나눠 물고 이야기를 하다가 특종을 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너는 내게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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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나는 늘 다짐했다. 너와 결별해야 한다고, 너 같은 녀석은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너의 지독한 냄새는 물론이거니와 자꾸만 네가 내 체력과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몹시 괴로워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한 달 넘게 너를 멀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너와의 이별은 번번이 실패했고, 네가 없으면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차에 네 몸값이 오른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100~200원도 아니고 무려 2000원이나! 한동안은 막막했으나 생각해보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10여 년간 지속했던 우리 인연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런 생각을 가진 이는 나뿐만이 아니더라.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20~30대 흡연자 21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를 끊거나 끊겠다는 사람은 전체의 60%(130명)에 달했다. 이들의 금연 이유 1위는 ‘담뱃값 인상이 부담돼서’(70.3%)였다. ‘건강을 위해’(22%), ‘가족 및 주변 사람의 권유로’(4.7%), ‘식당과 카페 등 금연구역이 확대돼서’(3.1%) 등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가 말했던가. “금연처럼 쉬운 일이 없다. 오늘 끊었다 내일 다시 피우고, 내일 끊었다 모레 다시 피우고….” 너와 헤어지는 일이 그만큼 힘들다는 역설적 표현이겠지. 하지만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이번 기회에 너와 영영 결별하려 한다. 안녕…. 다시는 만나지 말자.

글=채승기·유명한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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