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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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수에게서 편지가 왔다.
지난 2월에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에 처음 보낸 편지다.
선생님 !
그동안 별고 없이 잘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미국은 어마어마하게 땅이 넓어 한마디로 그냥「큰 나라」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땐 보이는 것이 다 인줄 알았는데, 내려와서 들으니 그것은 로스앤젤레스 근처래요. 그러니 미국을 다 본다면 어떻겠어요?
선생님 ! 그런데 이「큰 나라」는 법과 질서가 아주 잘 지켜지고, 웃음과 친절이 놀랄만큼 넘쳐흘러요….』
편지를 읽다말고 참시 연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작년「연화제」때는 연극반으로 스님역을 맡아 박수갈채를 받았다.
다시 편지를 읽어 내리며, 계속 이어지는 「큰 나라」에의 감동에 대한 답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 골몰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적마다 느낀 일이지만, 우리 학생들은 첨성대나 다보탑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음에 실망했노라고 투덜거렸다.
고층건물이 흔한 서울에서 태어났고, 고층아파트사이에 자리잡은 학교의 학생다운 투덜거림인지도 모른다.
연수의 편지를 보고, 새삼 이 좁은 국토에서 건너간 사람에겐 미국의 땅덩어리가 틀림없는 감동일거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어찌 그 엄청난 규모나 넓이에만 감동이 있으랴!
첨성대나 다보탑에 스며있는 천년의 기나긴 숨결을 보고, 듣고, 느낄 줄 아는 그런 눈, 귀, 가슴을 가지지 않고서야 !.
어느새 내가 쓸 답장의 한 귀절이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연수야!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문제란다. 마치 무얼 먹고 사느냐 보다, 어떻게 생각하며 사느냐가 더 중요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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