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린이 박력 있지만 참을성 모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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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로 색동회가 60돌이 되고 어린이날이 61회를 맞는군요. 더불어「반달」노래도 60년이 됐으니, 참으로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요』
「푸른 하늘 은하수…」『반달』의 작곡자로 평생을 어린이운동에 바쳐온 동요작곡가 윤극영 옹(80). 팔순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서도 때묻은「어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가 영원한 동심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60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린이들도 크게 바뀌었지요?
『사회가 변하는 만큼 어린이도 달라지게 마련이죠. 과학기술이급속도로 발달하면서 10년 걸릴 변화가 이젠 1년 정도로 단축되고 있는 것이 우리생활상의 현실이죠. 어린이들도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어요.
동경에서 방정환 선생을 만나 처음 어린이운동에 뛰어들었을 당시의 어린이들은 어른말씀에는 항상「네」하고 순종했지요. 그러나 지금 어린이는 부모의 말씀에 「왜요?」 하고 그 까닭을 알고자합니다. 바로 그만큼 차이가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지난날의 어린이가 무엇이든지 속으로 참고 지내야했기 때문에 시무룩하거나 침울했던 것에 비해 오늘날 어린이는 화려하고 발랄한 것을 두드러진 동심의 변화로 꼽는다.
인내성이 부족하고 심사숙고하는 태도가 없어진 약점이 있긴 하지만 이중성이 없고 솔직하며, 재치 있고 씩씩한 것이 장점이라는 그의 지적. 바로 60년 전 「씩씩하고 참되게, 아름답게 서로 서로 도와가자」 했던 색동회의 슬로건이 현재 아이들의 심상에 부각된 셈이다.
그는 『옛날 어린이의 「참을성」에다 지금 어린이의 「박력성」을 한데 섞으면 가장 훌륭한 동심성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요즘 어린이들은 동요보다CM송을 더 즐겨 부르는 경향이 큰데 섭섭하지 않으신 지 모르겠네요.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는 무엇이든지 동요가 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 동요를 파악하고 나머지를 이단시하는데 저는 반대입니다. CM송이라 해도 가사가 부적절하지 않다면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부른다고 해서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른의 노래는 어린이가 불러서는 안 된다」는 사고도 어린이의 동심을 맘껏 자라게 하지 못하고 병들게 하는 위험한 일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요즘 흔히 세대 차란 말을 많이 씁니다만 어른이 어린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 같지 않습니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동심을 지니고 있어요. 다만 그것이 「무자각의 동심」 일 뿐이지요. 쉽게 말해서 「올챙이적 생각」을 하면 모든게 이해가 됩니다. 어린이를 어른의 눈으로 해석하려 들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자랑입니다만, 제 친구들 중에는 늙은이가 없어요. 가까이 오는 사람은 모두 젊고 어린 사람이지요. 어린이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이전에 대화 속에 항상 어린이가 투영돼 있는 것, 노래하듯 말하는 것, 이것이 제가 지닌 비결입니다.(웃음) 바로 어린이다운 심정으로 어린이와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가 집에 가까운 4·19탑 근처나 공원에 나타나면 금새 한 무리의 어린이에 둘러싸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점잖음을 벗어 던지고 어린이다운 심정으로 곧바로 어린이세계에 뛰어들어 호흡을 함께 하는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몸이 불편해도 어린이와 함께 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잊고 즐거울 수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앞으로 여생을 바쳐 이룩하고싶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동심문화의 정착이다.
숨어있는 동심, 나타나는 동심, 지니는 동심-미래를 뚫고 나가는데는 바로 이 같은 「동심적 대화」를 주체로 해야하며 이를 문화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어린이 뒤에는 엄마·아빠, 그 뒤에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있지요. 가족간의 대화에도 반드시 어린이를 중심에 두고 어린이도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찾는 이가 많아 과로한 탓인지 몸이 좋지 않다며 누워있던 윤 옹이지만 어린이 얘기에는 지칠 줄을 몰랐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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