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 독일은 진행형] 上. 독일 전체가 반성 기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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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독일의 과거사 청산 방식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도대체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하는 게 정답일까. 종전 50년이 넘도록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독일의 과거사 청산 현장을 3회에 걸쳐 짚어보았다.

서유럽 최대 백화점인 베를린 카데베(KaDeWe) 맞은편에 자리 잡은 지하철 비텐베르크플라츠역. 역사를 빠져나오면 광장의 거대한 이정표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아우슈비츠.다하우.베르겐벨젠.부헨발트…. 시커먼 색깔의 안내판에는 '우리(독일인들)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경악의 장소'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나치 시절 끔찍했던 강제수용소 12곳의 이름이다.

베를린시를 걷다 보면 거리 곳곳에서 나치 과거의 어두운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유대인 처형 장소, 유대인 박해 장소, 유대인 저술 문서 소각 장소, 유대 교회당 방화 장소 등.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이곳에서 포츠담 광장 쪽으로 30m가량 발길을 옮기면 비석 2711개가 파도 물결 모양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장소를 볼 수 있다.유럽에서 학살당한 학살 유대인 추모공원을 건설하는 현장이다. 다음달 10일 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단장에 여념이 없다.

추모공원 재단의 우베 노이메르커 공보관은 "나치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독일 민족이 역사적인 책임을 깨닫도록 하라는 의미에서 세우는 공원"이라고 설명했다. 공원 주변은 1990년 통일 이후 정치.금융의 중심지역으로 떠오른 곳이다. 걸어서 5분 이내 거리에 국회의사당, 총리 관저를 비롯해 주요 대사관저와 금융기관 등 새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미국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이런 노른자위 땅 1만9000㎡(약 5760평)에 추모공원이 들어선다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감탄했다.

현장 안내인은 "공원을 중심가에 만들기로 한 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만행을 잊지 않는 것이 독일연방공화국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세계에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연방하원이 공원의 설립과 운영을 특별법으로 결정했다"면서 "공사비용 2760만 유로(약 370억원) 전액을 독일 정부가 부담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 유대인 학살 추모협회의 슈테판 만네스 회장은 "과거사 극복을 위한 노력은 독일인의 자아 정립과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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