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내 몸이라는 실 풀어 다른 옷 짜는 과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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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32면

저자: 장석주 출판사: 중앙북스 가격: 1만5000원

저자는 책에 파묻혀 인생을 보냈다. 1979년 두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며 등단했는데, 이후 출판사를 꾸리며 시인·비평가·에세이스트 등으로 활약했다. 30년간 ‘문장 노동자’로 살아온 그가 오랜 시간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스스로 깨친 창작 교본을 책으로 엮었다. 좋은 글을 쓰는 기본 요건부터 작가로서의 자세, 대가들의 작업 노하우까지 글쓰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결국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공부처럼 왕도가 없다. 일단 다독이다. 책을 워낙 느리게 읽었다는 스티븐 킹도 일 년에 70~80권 읽는 건 기본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에 빠져보지 않고는 작가가 되겠다는 건 언감생심인데, 여기서 질문이 있다. 왜 책이 그토록 중요하냐는 거다. 책 읽는 자의 뇌는 자극에 대해 체계적으로 반응한다는 게 과학적 증거라면, 두 번째 이유는 더 분명하다. 자신의 경험은 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경험을 통해 만나 문장 속에서 더 생생하게 거듭난다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느냐는 글쓴이의 경험치에서 나온다. 그래서 “글쓰기란 제가 지핀 불에 스스로 몸을 태우는 다비식”이라거나 “내 몸을 이루는 실(경험 혹은 기억)을 풀어서 그 실이 감당하는 만큼만 다른 스웨터(글)를 짤 수 있다”는 표현이 왜 합당한지, 글쓰기를 왜 ‘스타일’로 정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글은 곧 저자의 ‘생겨먹은 꼴’인지라, 어휘나 문장·단락·문체·구성 하나하나가 글쓴이의 표면과 심연이 어우러져 나오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허나 너무 비장할 필요는 없다. 경험을 끄적이기 위해 일기도 좋고 여행도 좋다.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써대는 훈련만이 요구된다. 직접 쓰지않고는 뭐가 틀렸는지 모르는 게 글이니까.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라는 문장은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 전업 작가만이 아니라 글을 쓴다는 모든 행위가 그러하다.

여기에 저자가 인용한 나탈리 골드버그(67)의 몇 마디가 도움이 된다. “손을 계속 움직여라, 마음 닿는 대로 써라, 보다 구체적으로 써라,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라, 구두점과 문법은 나중에 걱정하라, 당신은 최악의 쓰레기라도 쓸 자유가 있다 급소를 찔러라.”(『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책의 뒷부분은 그에 대한 실례다. 카뮈·김훈·박경리·최인호 등 그가 엄지손가락을 쳐든 글쟁이들의 ‘스타일’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왜 글이 곧 작가의 분신인가를 증명하려는 듯 말이다.

감각적 디테일이 돋보이는 김연수의 문체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매일 작업실 근처에서 달리기를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스치는 바람과 새소리를 포착하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간결한 문체를 선보이는 건 그의 인생 자체가 ‘하드 보일드’였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대표되는 하루키는 대학 졸업 후 재즈 카페를 열고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겠다는 욕망을 불태운다. 결국 글쓰기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온 공력이다. 좋은 글의 기준 역시 명료해진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자기답게 표현하는 것.” 이래서 글을 쓴다는 건 여전히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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