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도 없이 맞교대 마을버스 '과로 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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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죄송한데 저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9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의 한 마을버스 운전기사 A씨(67)가 운전 중이던 차를 주유소에 세우고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차를 급하게 몰다가 급정거를 해 손님들이 항의한 직후였다. A씨는 “화장실을 제때 못 가 방광염에 걸렸다”며 “급할 땐 3~4시간씩 계속 운전만 하니 눈앞이 어지럽다”고 말했다.

 ‘시민의 발’ 마을버스가 위태롭다. 휴식 없는 근무에 지친 운전기사들이 잇따라 교통사고를 내면서다. 지난 7일 경기도 양주시에서 마을버스가 도로의 전신주를 들이받아 승객 6명이 다쳤다. 같은 날 서울 이수역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던 전모(34·여)씨는 마을버스에 치여 숨졌다. 6일에는 경기도 성남시 모란시장 사거리에서 마을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가 택시와 부딪쳐 승객 11명이 다쳤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마을버스 사고는 매년 200여 건에 이른다. 3일에 두 번꼴로 사고가 나는 셈이다.

 운전기사들은 사고 원인으로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열악한 근무환경’을 꼽는다. 버스 한 대당 2.64명의 기사가 배정되는 시내버스와 달리 마을버스는 인력이 부족해 평균 2.1명이 운행한다. 사실상 2교대 근무다. 운행시간은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18시간이다. 한 사람이 평균 9시간씩 운전대를 잡는다. 그럼에도 식사시간은 20분이 넘지 않는다. 60분 운행 후 5분가량 휴식하는 게 관행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영등포구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기사 한모(62)씨는 “길이 막히거나 신호 때문에 운행 시간이 길어지면 쉴 틈 없이 두세 시간을 운전해야 한다”며 “한 턴을 빨리 돌아야 담배라도 한 대 피울 수 있다는 생각에 자꾸 무리하게 되고 신호가 걸리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마을버스가 시내버스 회사 취직을 위한 ‘초보운전자 연습소’처럼 된 것도 문제다. 이는 시내버스 회사가 채용 시 마을버스 1년 이상 운전 경력을 요구하면서 생겼다. 60대 이상 운전자 비율도 30%가 넘는다. 서울특별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 간부 김모씨는 “젊은이들의 로망은 시내버스라 마을버스 기사로 1~2년 일하면 떠난다”며 “고령 운전자와 초보운전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버스 환승제가 2004년부터 시행되면서 적자 폭이 커졌다”며 “현재 750원인 요금을 인상해야 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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