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요직선거 산표· 무효표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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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1l6회 임시국회 벽두에 실시된 국회 정· 부의장 및 상임위원장 선거는 오늘의 정치분위기와 정치인들의 잠재심리를 읽을 수 있는 몇가지 징후를 드러냈다.
결과는 예상했던대로 민정· 민한당이 내정한 후보자들이 투표를 통해 무난히 당선되어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만한 것이 못된다. 다만 투표과정을 통해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비록 대세에 영향을, 미칠정도는 아니었지만 산표와 무효표가 관례와 상식보다 다소 많았던 점이다.
국회의장 선거에서는 재서 2백72명중 49표, 두차례의 부의장선거에서는 각각 44표와 68표의 산표가 나왔고 13개 상임위원장선거(재석 2백71)에서도 평균33표가 민정당이 내정한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특히 의장선거에서는 당론의 뒷받침도 없이 선거직전에 출마를 선언한 국민당의 이만변 의원이 국민당 의석(25)보다 9표나 많은 34표를 얻어 주목을 끌었다. 반면 민한당의 부의장후보인 고재정 의원을 뽑을때엔 같은 민한당 소속의원 13명에게 27표가 갔다.
또 이번 선거에서는 불과 l, 2표를 얻은 소수득표자가 매번 최저 4명에서 최고 22명에 달했다. 대체로 산표와 비슷한, 숫자를 기록한 무효표는 아야 기명을 하지 않은것도 있었으나 후보자의 한자명 모는 한글이름을 오기해 생긴것도 적지 않았다.
그러면 다수당에서 의장을 내는 의회정치의 사례에도 어긋날 뿐아니라 뻔히 안될줄 알면서 제3당의원이 의장출마를 선언한 것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또 그런 사람이 기대이상의 득표를 하고 산표와 무효표가 양산된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를 단순히 일부의원들의 「장난기」 로 보고 그들의 자세가 진지하지 못하다고 나무라야 할것인지, 아니면 이런 현상의 배경에 음미할만한 정치적의미가 있다고 봐야할 것인지….
물론 장난기도 있는 것같다. 엉뚱하게 여성의원 이용을 적어 넣거나 이름을 고의적 (?) 으로 오기하여 무효표로 만든 사례등은· 장난기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의장선거에서 「변절자」 란 표기가, 나온 것을 보면 장난기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설혹 장난기가 많더라도 요직선거에서 꽤 장난기가 발휘되고 당선 못할 경선에 뛰어드는 사람이 생기느냐가 문제다.
이를테면 민정· 민한당등 대정당에 의해 주도되는 국회운영방식에 국민당이나 의정동우회가 소수파의 비애와 반발을 상당폭 느끼고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평소의 소외감이 이런 기회에 표출된게 아닌가하는 것이다.
반면 민한당이 자당후보에게까지 표를 몰아주지 못한것은 당지도부의 통제력부족과 인사 개편후에 생긴 개인적인 불만이 얽혔기 때문일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보다 더 곰곰이 생각해야할 것은 혹시 경선에 대한 향수나 갈증이 이런 현상과 관련이 없겠느냐 하는 점이다. 결과를 알고 하는 무표· 행위와 경쟁다운 경쟁이 없는 요식으로서의 선거에 대한 염증, 동원된 군중이 느끼는 소외심리 같은 것은 없을까.
만약 이런 심리가 내재하고 있다면 요의 이탈증거가 별로 없는 민정당으로서도 결코 간과해 버릴 수 없는 숙제가 점점 쌓여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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