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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선과 대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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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독일 총선이 끝난 지 오늘로 열흘째다. 하지만 독일 정부를 이끌어 갈 차기 총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연임할 수 있을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를 노리는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당수가 총리가 될지, 아니면 제3의 인물이 될지 점치기 어려운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한 달이 넘도록 당선자를 확정하지 못해 '카프카적(kafkaesque) 혼란'에 휩싸였던 2000년 미국 대선의 악몽도 떠오른다.

이번 총선에서 독일 유권자들은 중도좌파의 사민당이나 중도우파의 기민.기사당 연합 어느 한 편의 손도 확실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기민.기사당 연합이 35.2%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됐다고 하지만 사민당(34.3%)에 비해 득표율로는 0.9%포인트, 의석수로는 3석 앞섰을 뿐이다. 군소 정당과 합종연횡을 통한 집권 가능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양측은 좌.우가 손을 잡는 대연정을 현실적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적과의 동침'이 말처럼 쉬울 리 없다. 슈뢰더와 메르켈은 서로 자신이 대연정을 이끄는 총리가 돼야 한다며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게 안 되면 제3의 인물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동반 퇴진하자는 '물귀신 작전론'이 부상하더니 급기야 총리의 임기 4년을 사이좋게 절반씩 나눠 갖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식 권력 분점 방안까지 나오고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독일 국민의 선택은 자명하다. 대연정이다. 여론조사에서도 70% 이상이 대연정을 지지하고 있다. 독일 국민은 성장과 복지를 절충한 슈뢰더의 '신중도(新中道)'적 개혁으로는 복지 부담과 노조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독일을 병에서 구해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독일의 마거릿 대처'를 표방하며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앵글로 색슨식 개혁을 외치고 있는 메르켈에게 정권을 맡기는 것도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독일 국민이 바라는 개혁의 좌표는 슈뢰더의 주장보다는 오른쪽, 메르켈의 주장보다는 왼쪽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유럽 대륙의 조합주의적 전통의 부담과 영.미의 신자유주의적 현실의 부작용을 감안할 때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접점을 찾아내 실현 가능한 대연정 구도를 만들어 내는 일이 두 사람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인 셈이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슈뢰더의 사민당은 물론이고 메르켈의 기민.기사당 연합도 보수보다는 진보에 가깝다. 둘 다 사회적 시장경제에 입각한 분배적 정의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다만 그 뿌리가 다를 뿐이다. 사민당이 19세기 마르크스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기민.기사당 연합은 기독교적 공리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6년 총선 후 사민당이 기민.기사당 연합과 대연정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에 강한 미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소야대의 한계와 지역주의적 대결 구도에 발목이 잡혀 있는 그로서는 능히 그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독일과 다르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야당인 한나라당은 토양부터 다르다. 이념과 노선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분모가 없다. 화성에서 온 정당과 금성에서 온 정당 간에 물리적 결합은 가능할지 몰라도 화학적 결합은 불가능하다. 한국적 현실에서 대연정은 작동 불능의 모험이 되기 십상이다.

불편하고 개탄스러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정치공학적 발상으로 주어진 현실을 갈아엎는 묘수를 궁책하는 것은 정치의 로또 복권 당첨을 노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방법은 한 가지다. 정공법이다. 당장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당장 국민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헤아려 작은 것 하나라도 찬찬히 풀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의 마음과 가슴을 얻어내는 것이야말로 실현 가능한 최선의 방책이다.

배명복 국제담당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