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박지성' 전가을 "몸에 기름기 쫙 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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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을은 12살에 축구를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치마를 입은 적이 없다. 지난달 30일 인터뷰 때도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었다. 유일하게 멋부린 부분은 금발 머리다. [강정현 기자]

2015년은 여자축구의 해다. 6월 캐나다에서 여자 월드컵이 열린다. 한국은 2003년 미국 대회에 이어 12년 만에 두 번째로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미국 월드컵에선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했다.

 그 누구보다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가 ‘여자 박지성’ 전가을(28·현대제철)이다.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박은선(29·로시얀카)에 가려 있지만 전가을은 A매치 64경기에 나와 30골을 넣은 베테랑이다. 엄청난 활동량, 예리한 패스, 과감한 돌파와 슈팅 등이 박지성을 빼닮았다. 대표팀 내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과 등번호(7번)까지 박지성과 똑같다.

 전가을은 2010년 수원FMC를 여자프로축구(W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그러나 이듬해 현대제철로 옮긴 뒤 주춤했다. 전가을은 “자만에 빠져서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지소연과 박은선은 대표팀 에이스가 됐다. 자극을 받은 전가을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인도와 경기에서 3골·3도움을 기록했다. 8강 대만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었다. 북한에 1-2로 아깝게 져 동메달에 그쳤을 때는 펑펑 울었다. 이젠 월드컵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전가을을 만났다.

 -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2015년엔 더욱 독해지겠다. 월드컵에서 이기는 생각만 하고 있다. 6개월 전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숙소에 자전거와 아령을 갖다놓고 하루 1~2시간씩 체력훈련을 꾸준히 했다. 자기 전 복근 운동을 200번씩 했더니 배에 ‘왕(王)’자가 생기더라. 음식 관리도 철저히 한다.”

 - 식단을 공개할 수 있나.

 “근육을 만들기 위해 삶은 계란과 단백질 쉐이크를 꼭 챙겨먹는다. 밀가루 음식은 안 먹는다. 부침개를 좋아하지만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기름을 쏙 뺀 백숙을 자주 먹는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창 몸이 좋을 때는 체지방률이 6%가 나오더라.(남자의 평균 체지방률은 15~20%, 여자는 20~25% 정도다)”

 - 언제 체력이 좋아졌다고 느끼나.

 “뛸 때마다 힘이 느껴진다. 속도·힘·균형이 예전과 다르다. 상대 선수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 전도사가 됐다. 다른 선수들도 나를 따라 웨이트를 열심히 한다. 너무 훈련을 많이 해서 팔목이 아파 물건을 들어올리기 힘든 적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 쉬었더니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팔목에 테이프를 감고 또 운동했다. 코치님이 웨이트를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다.”

 -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원래 탁구 선수를 하려고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를 따라서 탁구동호회에 자주 나갔다. 어른들을 다 이길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지만 팔꿈치에 뼛조각이 생겨 깁스를 했다. 깁스를 하고도 운동이 하고 싶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로 하는)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전에도 쉬는 시간마다 남자애들하고 공을 찼다. 그랬더니 축구부 코치님이 같이 하자고 했다. 내가 축구부에서 유일한 여자였다. 사실 아빠 꿈이 축구 선수였는데 내가 대신 꿈을 이룬 셈이다.”

 - 이름이 예쁘다. 누가 지어줬나.

 “생일이 1988년 9월 14일인데 서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TV에서 성화 봉송 장면이 자주 나왔다. 그래서 할머니가 내 이름을 ‘전성화’로 지으려고 했다. 다행히 아빠가 ‘촌스럽다’고 단칼에 잘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가을에 태어났으니 가을이라고 지어주셨다. 여성스러운 이름만큼 원래 머리도 길었다. 그런데 운동할 때 불편하더라. 머리 다듬고 만지는 것도 귀찮아서 짧게 잘랐다.”

 -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0·레알 마드리드)라고 하던데.

 “중학교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호날두를 TV로 봤는데 혼자서 쌩쌩 날아다니더라. 첫눈에 반했다. 화려한 플레이가 좋다. 알고 보니 기부도 많이 하고, 헌혈 때문에 문신도 안 한다더라. 그래서 플레이뿐만 아니라 호날두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졌다. 나도 코칭스태프에게 ‘고맙습니다’는 엽서 한 장이라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내 실력을 100% 못 보여줄 때 그라운드를 떠날 거다. 은퇴 전에 월드컵 챔피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요즘은 좀 현실적이 됐다. 일단 월드컵 8강이 목표다. 8강까지 가면 우승도 할 수 있다. 새벽에 잠도 안 자고 월드컵 조 추첨식을 지켜봤다. 브라질(FIFA 랭킹 8위) 스페인(15위) 코스타리카(37위)와 한 조가 됐는데 한국의 랭킹(17위)을 감안하면 브라질은 힘겨운 상대다. 스페인은 해볼 만하다. 소속팀의 스페인 전지훈련 때 바르셀로나·에스파뇰 팀과도 경기를 해봤는데 이기거나 비겼다. 코스타리카는 정보를 많이 수집해야 할 것 같다.”

 - 월드컵까지 5개월 남았는데.

 “대표팀 선수들이 모일 때마다 월드컵 이야기를 한다. 윤덕여 감독님은 남자 선수들만큼 훈련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믿고 따라가면 이룰 수 있다. 난 평소에 발목 통증을 달고 산다. 병원에선 수술을 권하는데 월드컵 전까지는 안 한다고 했다. 나, 정말 축구에 미친 여자 맞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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