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2주 만에 수정테이프 10통 쓰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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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은이는 중간·기말고사 땐 거실에 놓인 책상에서 공부한다. 스탠드와 교재, 필기 도구만 있어 집중하기에 좋다고 한다. 독서실에 안 가는 건 입으로 소리내서 공부할 수 없어서다.

서울 배화여고 2학년에 올라가는 정가은(17)양은 공부할 때마다 복사용 종이를 준비해놓곤 한다. 교과서나 문제집을 복사하는 공부 습관 때문이다. 가은이는 공부할 때 일단 교과서나 문제집을 3부 복사한다. 그리고 외워야할 단어나 문제의 정답에 흰색 수정테이프를 이용해 빈 칸을 만든다. 그리고나서 그 빈 칸 채우기를 3번 반복한다. 기자와 만난 지난달 5일에도 가은이는 오른손에 수정테이프를 쥐고 있었다. 가은이는 “복사본을 활용하면 암기가 쉽다”며 “시험공부를 할 땐 2주 동안 복사지 50장, 수정테이프 10통 정도를 쓴다”고 말했다.

글=조진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가은이는 ‘과학’ ‘생활과 윤리’ ‘기술과 가정’ 등 암기과목을 공부할 때 이 방법을 많이 쓴다. 그는 “수정테이프를 활용하면 중요 키워드의 개념이 자연스레 이해된다”며 “시험 때도 머릿 속에 잘 떠오른다”고 말했다.

수학을 공부할 땐 복습노트를 만들어 고난도 문제를 따로 정리하는 방법을 쓴다. 교과서와 참고서, 5~6종의 문제집 가운데 반복적으로 틀리거나, 풀기 어려운 응용·심화문제를 골라 노트에 베껴쓰는 거다. 가은이는 “노트 한 페이지에 5~6개 정도의 문제를 베껴쓴다. 각 문제마다 ‘알면 쉬움’ ‘실수(로 틀림)’ ‘숫자 오독’ 등 각 문제의 특징을 메모한다. “왜 틀렸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문제를 다시 풀면 풀이과정이 잘 와닿는다”고 말했다. 또 각 문제 아래에는 두세 줄 가량의 풀이과정을 적기 위한 ‘공란’을 남겨둔다. 암기 과목을 공부할 때처럼 풀이과정을 쓰고 수정액으로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기 위해서다.

비교적 쉬운 수학문제를 풀 땐 속도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가은이는 특히 리듬감 있는 노래를 듣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수 ‘지드래곤’의 팬이라는 가은이는 “‘나만 바라봐’ ‘삐딱하게’ 같은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속도감 있게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응용·심화문제를 풀 땐 집중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은이도 종종 슬럼프에 빠진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그렇다. 그때마다 가은이는 집에서 300m 정도 떨어진 한성과학고(서대문구 현저동)를 쳐다보곤 한다. 가은이는 2년 전, 유명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면접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 가은이는 “늦은 밤까지 불 켜진 한성과학고의 창문들을 쳐다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며 “일반고에 다니지만 실력만큼은 특목고 아이들에 비해 뒤지지 않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는 어떻게 집중력을 유지할까. 지난해 2학기 가은이는 교실에 있는 스탠딩 책상을 활용해 졸음을 쫓았다. 그 전 학기엔 체육시간 직후에 들어있던 지리 시간마다 졸았던 탓이다. 지리 선생님께 “넌 꼭 내 수업에 졸더구나”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성적도 걱정스러웠다. 그 후부터 졸릴 때마다 교실 뒤편에 마련된 스탠딩 책상에 서서 공부를 했다. 가은이는 “튀는 행동 같아 처음엔 살짝 창피했다”면서도 “집중력 향상을 위해 2주에 한 번씩은 꼭 스탠딩 책상에서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체력과 건강도 꾸준히 관리한다. 특히 중간·기말고사를 2주 앞두고부터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한다. 가은이는 “따로 시간을 내 운동을 하는 편은 아니다”며 “체육시간만 충분히 활용해도 내신도 올리고, 체력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과목은 1,2학년 교과서과 참고서를 함께 펴놓고 공부한다. 이런 과목들은 저학년에서 배운 내용을 고학년에 심화학습하는 나선형 학습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1 과학에서 배운 세포에 대한 내용이 고2의 생명과학2에 심화된 형태로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둘을 같이 놓고 비교하며 공부하면 이해가 쉽다고 한다.

가은이는 혼자서 스스로 공부하는 편이다. 수학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다. 현재는 학교수업 진도에 맞는 수학학원을 다니고 있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은 중학교 시절의 독서·논술 과외 덕에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다른 또래 친구들처럼 국·영·수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는 대신, ‘어릴 적부터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어머니의 신조에 따라 중학교 시절 내내 독서·논술 과외를 받았다. 당시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저) 등 교양 도서를 일주일에 한 권씩 읽으며 토론을 했다. 약 2년 6개월간 읽은 책이 100여 권에 달한다. 가은이는 “꾸준한 독서와 토론이 사고·분석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며 “당시 읽었던 일부 소설 내용은 지난해 모의고사에 지문 형태로 출제됐다”고 전했다.

또 가은이는 집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한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다보면 쉽게 산만해져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실에 안 가는 건 입으로 소리내서 공부할 수 없어서다.

어머니 박경순(45)씨는 가은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관점을 키워주도록 도왔다. 박씨는 “가은이와 서울시립미술관·경복궁 등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관찰하고 경험했다”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한 복지시설에서 4년째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되기보단, 불우이웃을 돌보는 활동이 아이 인성을 기르는데 주효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박씨는 “모녀가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귀띔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진로계획을 설정하진 못했지만, 가은이의 대입 목표는 일단 서울대 경제학부에 진학하는 거다. 가은이는 “문·이과를 아울러 다양한 학문 영역을 접목시키는 경제학의 매력에 끌렸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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